수필가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경칩이 다가오면 지상의 각종 생명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오늘도 남도로부터 꽃 소식이 들려온다.

이때가 되면 종종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며 쉼표 하나 그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그곳에 가면 나 자신의 진정한 삶을 변화시킬 강력한 그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아서이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숙제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영혼의 떨림을 따라온 남도의 통도사는 봄을 알리는 홍매화가 살짝 피어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통도사 홍매화, 수줍은 듯 발그레한 꽃잎에 속눈썹 긴 꽃술, 아직 덜 피어난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은 멋스럽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옆에 서 있는 백매화도 늦을세라 조롱조롱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다. 유난히 긴 겨울에 20여 일 정도 늦게 피어나는 걸 보니 이 봄도 어수선한 세상에 오기가 두려웠나 보다.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모인 사진작가들이 홍매화 곁에서 떠날 줄 모른다.

겨울 추위의 고통을 이겨내고 핀 매화는 수행자의 모습이다. 마음이 고요해야 진정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해 ‘귀로 향을 듣는 꽃’이라 했다.

수령 370년의 홍매화는 통도사를 세운 자장율사의 법명을 딴 ‘자장매’로 더 유명하다.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영각을 중창할 때 싹이 터 현재에 이르고 있는 홍매화는 사찰의 아득한 시간 속에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통도사, 이름만으로도 어느 하나 밋밋한 것이 없고 연못 하나에도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원한 자유를 얻고자 하는 길, 자비로운 세계를 이루고자 이타행(利他行)을 하는 이 길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초입부터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로 겹겹이 우거진 아름드리 소나무, 춤추듯 굽고 휜 모습에서 이 또한 수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빗질 고운 마당에 서 있는 전각과 암자마다 기도하는 발길이 이어진다. 석가의 실체가 보이지도 않고 떠나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머물지도 않는 그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위에 내 마음도 얹는다.

천년의 세월 동안 깨달음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통도사의 기운을 받으며 천왕문을 나서니 그 짧은 조우에도 온갖 걱정과 고민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봄은 동해의 방어진에도 오고 있었다.

울산의 해변은 꽃샘바람보다 조용하고, 들녘보다 품이 넓고, 봄 향기보다 상큼했다.

해변의 햇빛은 진주같이 부드럽게 빛나고 포근했다. 파도가 가슴속으로 철썩철썩 들이친다. 슬도의 파도소리는 슬도명파( 瑟島鳴波)로 백결의 거문고 소리를 내며 먼저 봄 마중을 나왔다. 해변의 봄은 도시보다 유동적이며 탄력적으로 다가왔다. 약간의 긴장과 적당한 느슨함으로 시작되고 있는 남도의 봄은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 19에도,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전쟁과 화재로 인한 파괴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오고 있었다.

시공간으로 스며드는 봄은 자연에서 오지만 내 인생의 진정한 봄은 나 자신이 만들어내는 ‘내적 마음’에서 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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