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소나무는 푸르다. 사철 푸르다, 가을이 되면 낙엽 지는 다른 활엽수와는 달리 상록수인 소나무는 겨울에도 그 푸른빛을 유지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소나무는 절개의 상징물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소나무는 일반인은 물론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 나 역시 소나무를 좋아한다. 그리고 많이 보아왔다. 얼마 전까지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특히 반송이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 둥치부터 여러 개의 줄기가 자라서 우산 모양의 반원형 형태로 자라는 이 나무가 보기에 참 좋았다. 운동장 가에 심어져 있는 반송의 행렬을 따라 걷는 등하교 길은 늘 즐거웠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이었다. 나는 우연히 소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누런 솔잎을 보았다. ‘어라! 소나무도 낙엽이 지나?’ 불현 듯 떠오르는 생각에 머리 위에 있는 키 큰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솔잎의 윗부분은 분명 푸른빛을 띠고 있었지만 아랫부분은 누렇게 변해있었다. 겉으로는 푸른빛을 유지하긴 했지만 겨울 소나무는 속으로 낙엽 지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어 이 나무 저 나무를 살펴보았더니 모든 소나무가 다 그랬다. 소나무 밑에는 낙엽 진 솔잎이 누렇게 수북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구나! 그랬던 거구나!’하고 나는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松栢之後彫也의 의미를 조금 깨달은 것이었다. 그때 시 한 편이 내게 다가왔다.

 

푸르던 잎이 지는 계절이 오면 / 소나무는 속으로 앓는다 // 여름처럼 성성한 잎 / 그대로인 척 당당한 체하지만 / 소나무도 춥다 겨울이 오면 / 남들 모르게 잎도 지고 / 찬바람엔 몸을 떤다 // 잎들이 혼돈 속으로 떨어지고 / 산야가 눈으로 묻혀버리는 계절이 오면 // 소나무는 푸른 잎 그속에 / 누렇게 바랜 가슴 감추고 / 견뎌내고 참아내며 / 파랗게 떨면서도 / 의연한 척 기도한다 // 남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란 / 그렇게 / 내 아픔을 견뎌내는 것이다 //

 - 졸시 「소나무의 겨울」, 『꽃에게 전화를 걸다』 전문2021 시산맥

 

한 겨울 혹한을 견뎌내다 보면 소나무도 사실은 추위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나무들처럼 낙엽이 지지 않을 뿐 소나무도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혹독한 추위를 속으로 참으며 견뎌내고 있으리라. 의연한 척 겉으로는 푸른빛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추위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겨울도 거의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동네 공원에 산책하러 가다보니 공원 안의 소나무 잎이 추위에 지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아침에 눈발이 날렸었다. 솔잎을 보니 푸르긴 했지만 어딘가 힘이 빠지고 지친 듯한 모습이었다. 한 겨울을 지내고 겨우 봄이 오나 싶었는데 다시 눈발이 날리니 힘이 빠질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소나무의 삶이 사람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란 그렇게 내 아픔을 견뎌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며칠 뒤엔 달이 바뀌고 우리 사회에도 큰 변화가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소나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많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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