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오랜만에 아침 말씀을 듣고 성경을 조금 읽은 후, 둘째 딸이 먼저 일어나서 밥을 주고 치우고, 첫째 딸이 일어나 밥을 주고 치우고, 환기하고 청소하고 창고를 정리하니까 12시 더라구요.” 지난달부터 1년간 육아휴직으로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A씨의 말이다. A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전에는 맞벌이 때문에 아이들한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퇴근 후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인 자신에게 짜증을 내는 아내가 밉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해 결심을 하고 아내가 휴직을 하기로 했으나, 사정이 만만치 않아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직장에서 선배와 동료들이 만류했다. 여자도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데, 남자가 육아휴직을 내면 승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승진에 한 번 아픔을 겪었던 A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처음 A가 육아휴직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도 적잖이 놀랬다.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다고?’라는 필자의 놀람 속에는 육아에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승진에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의 결단이라 걱정도 됐다. 아무튼 A는 1월이 조금 넘게 살림을 하고 있다. 밥과 청소는 기본이고, 유튜브를 보면서 요리까지 한다고 한다. 영상통화로 A가 살림에 대해 얘기하는 내내 그의 아내는 싱글벙글이다.

A는 딸들을 위해 두 번 아침상을 차리는 수고 덕분에 엄마들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치우고 나면 금새 점심 걱정,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나면 또 저녁 걱정이라는 아내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과의 거리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한다. 전에는 맨날 싸우는 엄마보다 잘해주는 아빠인데도 거리감이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거리감은 살림을 하는 1개월여 만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방학이라 하루 종일 딸들과 함께하면서 아이들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소통이 더 나아졌다고 한다.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휴직에 따른 불이익이 거의 없는 공공기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남자의 육아휴직은 더욱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육아휴직이 무급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고, 다음은 육아 때문에 휴직을 한다는 것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탓인 것 같다. 필자처럼 외벌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남자의 육아휴직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법으로 보장하는 육아휴직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까?

사람의 일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꼽으라면 8세 이전, 초등학교 입학 전의 시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시기에 심리적 안정감, 성격, 대인관계,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등의 대부분이 형성된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할 이 중요한 시기를, 우리의 자녀들은 외부에 맡겨진 채로 지낸다. 마땅히 채워져야 할 것이 부족하게 되고, 이 부족함에서 오는 결핍은 많은 심리적, 정신적 어려움을 가져온다.

필자도 세 자녀를 지켜보면서 이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그래서 큰딸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A도 필자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과감하게 육아휴직을 냈고, 살림하는 남자로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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