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오송중학교 교감

[충청매일] 몇 해 전이었을까. 어느 방송사에서 기획한 “토론의 달인, 세상을 이끌다”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래된 영상이지만 이 속에는 변하지 않는 토론의 본질이 담겨 있다. 우리는 토론을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말싸움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나와 상반된 의견은 무조건 비판하고 수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비판적인 사고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경청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 모두를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펼쳐낸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토론이란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견해를 넓혀주는 활동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정말 ‘토론이 세상을 이끌까?’하는 의문이 든다. 이 영상을 본 뒤에 그 해답을 찾게 되는데, 역대 미국에서 호평을 받은 대통령들은 모두 연설을 잘하며 토론을 즐겼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한 연설문은 중학교 수업 자료로 활용된다고 소개하면서 오랫동안 지도자의 토론 혹은 연설 실력은 리더십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오바마 역시 탁월한 토론 능력이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바마식 화법’의 비밀을 밝히고 있는데, 냉철한 논리와 단호함이 있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대중의 감성을 울리는 진정성이 있고 긍정의 힘으로 차이와 다름을 포용한다. 그동안 다른 대통령들이 ‘fight’를 외치며 강한 힘을 과시했다면 오바마는 ‘promise’를 외치며 적이라도 끌어안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치 신인이며 흑인인 그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게 한 것이다. 이 새로운 역사를 만든 힘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오바마의 토론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토론 능력이야말로 미래 인재상의 핵심 역량이며 리더 교육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도 스펙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토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토론 교육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일까. 동일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는 합리성과 공정성의 원칙이 아닐까 싶다. 토론도 스포츠처럼 공정한 기회가 제공되는 활동이다.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은 나의 말을 경청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론할 때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토론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토론이 재미있는 이유는 나와 토론할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관심 있는 주제라도 모두 같은 의견으로 이야기한다면 토론이 조금은 시시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와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벌이는 설전이 있기에 짜릿하고 즐거운 것이다.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당사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토론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럼 이들의 토론에서는 토론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수십 년간 토론 교육에 힘써 온 강치원 교수는 ‘토론의 힘’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토론 교육이 답이라며, ‘화이부동’의 정신을 강조했다. 즉 다름을 인정하며 같음을 지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어 창조성과 공동체성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진정한 ‘토론의 달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아닐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