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중산고 교감

 

[충청매일]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시인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의 일부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큰집에 모인 친척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노는 흥겨움이 절로 느껴진다. 시인 백석의 고향이 평북 정주임을 생각해 보면, 저 멀리 북쪽이나 남쪽이나 우리 민족의 명절 모습은 다 같았던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명절을 기다리는 설렘은 삶의 큰 행복 중 하나였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새옷도 장만하고 용돈도 받고 친척들이 함께 모여 훈훈한 정을 나누는 게 참 좋았다. 삶이 팍팍하고 고단해도 명절만큼은 모든 걸 잊고 피붙이들과 함께 즐기고 나누며 힘겨운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새해 들어 우리 민족 최고의 명절이라는 설을 보내면서 코로나19가 바꾼 명절 풍경을 실감했다. 코로나19를 처음 겪을 때는 명절을 앞두고 고향의 부모님들이 보고싶은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고 말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이런 명절도 몇 번 지나고 보니, 이제는 으레 친척과 친지 방문도 꺼리고, 차례 지내는 것도 대충 넘기게 되었다. 참 쓸쓸한 명절이 되었다.

우리집도 삼남매 중 타도시에 사는 두 남매 가족은 고향에 오지 않고 고향에 사는 우리 가족만 부모님과 함께 했다. 다행이 맏이인 형님이 고향마을에 따로 집을 짓고 혼자 내려와 있어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이 느끼는 적적함은 컸다.

눈 내린 설날 아침 고향집 마당을 쓸고 대문 앞에 나서보니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다. 늘 고향을 찾은 이들이 많아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마을회관 앞과 골목길이 북적댔을텐데 그저 조용했다. 명절 때나마 어릴 적 함께 했던 고향선후배를 만나 옛이야기도 했는데, 이제는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간에도 소통의 기회가 줄다보니 어떻게 사는지, 서로의 고민도 모르고 괴리감만이 커간다. 먹고살기 어려워도 명절 때 한번 씩 만나 어려움도 나누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건 돕고 했었다. 이제는 생면부지인 남들과 다를 바 없어, 모두를 더욱 외롭게 하고 있다. 코로나로 장사도 안 되고, 물가와 부동산 값은 뛰고 이래저래 고통은 더 크게 느끼는데, 숨통을 트일 만한 일도, 하소연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할 기회도 없이 그저 인고의 세월만 깊어지고 있다.  

쇠락하는 고향집처럼 늙어가는 부모님들도 언제 요양원으로 가야할지 모르는 세월에,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 만나는 자식들과 함께 하는 게 큰 낙인데, 코로나가 많은 걸 빼앗아 간듯해 참 안타깝다. 올 추석은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명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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