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대학교 겸임교수

 

[충청매일]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아버지. 붉게 빛나는 처마를 보며, 그날의 일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빛바랜 상량문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의 다듬잇돌과 장독대 옆 골담초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울컥울컥 오르락내리락했다.

지난해 봄부터 8개월 넘게 집을 고치는 일에 매진했다. 이틀에 한 번씩 비가 오면서 애를 태우더니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마른장마와 무더위에 모두가 기진했다. 뒤늦게 찾아온 가을장마는 새집을 통째로 삼킬 것 같아 여러 날 잠을 설쳤다. 괜한 짓 했다며 후회를 한 적도 있었다. 새로 지으면 될 것을 왜 고생 사서 하느냐며 핀잔주는 사람도 있었다. 십 원짜리까지 탈탈 털었으니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다듬어 놓고 보니 마음이 후련했다. 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고쳐 쓰겠다는 나의 다짐이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동안 나는 지역과 전국의 문화 현장에서 수많은 일을 도모했지만 이렇게 나를 위해 투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순전히 내가 해야 할 사회적 책무 앞에서 미친 듯이 일만 했을 뿐이다. 그때 배우고 익힌 것들을, 그때 다짐하고 결의한 맹세를 지금 실천에 옮긴 것이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진다. 건축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 공간은 또다시 우리를 만든다. 그리운 것은 모두 고향에 있다. 그러니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고 풍경을 담으며 새로운 희망을 담자고 웅변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버지의 땅을 딛고, 엄마의 가슴을 치며 다시 태어났다. 책으로 가득한 풍경을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예술의 향기가 솔솔 피어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삶의 여백을 찾고 즐기는 곳으로 가꾸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작지만 소소한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물결칠 것이다. 그래서 집 고치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책 제목은 ‘아버지가 지은 집 아들이 고쳐쓰다, 책의 정원 초정리에서’다.

이 책에는 고향 마을의 옛 풍경이 글과 그림으로, 집 고치는 세세한 과정이 글과 사진으로 담겨져 있다. 글과 그림과 사진이 있는 책이다. 그리고 지난해 말 집들이 겸 출판기념회를 고향 집 마당에서 개최했다. 춤과 노래와 책 이야기가 있는 축제가 펼쳐진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삶의 둥지를 지었지만, 아들인 나는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책이 있고, 그림이 있으며, 문화로 가득한 풍경이 있도록 했다. 바로 앞에 세종대왕 초정행궁이 위치해 있다. 어떤 이는 초정행궁보다 더 값진 곳이라며 칭찬을 했다. 천장의 붉게 빛나는 서까래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책과 예술작품 앞에서 가슴이 먹먹했다는 사람도 있다. 삶의 향기가 무엇인지, 문화가 있는 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사랑할 시간만 남아있다. 뜨거운 눈물이 그랬다. 나의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남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는지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았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이제는 진심을 다하고 용기를 다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말이다. 이곳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문화예술의 향연 가득한 풍경을 빚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을 추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풍경을 빚을 것이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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