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충청매일] 신년도 다이어리를 한권 사서 표지를 넘기니 ‘버킷리스트(?)’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듣긴 한 것 같은데 선뜻 생각이 나질 않아서 네이버에 들어가 뜻을 알아보니 ‘내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친구들이 하나 둘 저세상으로 떠나는 것 보니, ‘버킷리스트’란 단어가 내게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임인년(壬寅年)에는 오래된 앨범을 ‘타임머신’으로 삼아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위하여, ‘오래된 사진첩’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70년대 영동여고 체육교사로, 옥천여고 국어교사로 근무했던 시절이 주마등같이 펼쳐진다. 당시 여학교를 ‘말 많은 동네’라고 했다. 영동여고 시절 총각선생이었던 나는, 말 많은 동네에 화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옥천여고에서 담임도 하고 국어 교과서를 통하여 ‘꿈 많은 여고시절’ 그들 과 함께 애환을 같이하면서 교감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이 생애에 절정이었다고 생각된다.

남학생들은 졸업하고 나서도 함께 막걸리 한 잔 나누면서 인생의 선배로서 친숙하게 지낼 수 있지만, 여학생들은 전연 딴판이다. 학교 다닐 때뿐 인연이요, 일단 졸업을 하고 나면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40여 년쯤 지나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가끔 “선생님 꼭 한 번 만나고 싶었어요!” 란 전화가 온다. 그들도 나이가 60고개를 바라보니 대담하고 솔직해졌다. 더러는 ‘선생님이 제 첫 사랑이었어요!’라고 서슴없이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날 자신이 없었다. 학창시절에 비춰진 선생님은 모습과 4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 보자. 학창시절 간직했던 선생님에 대한 꿈이 환상으로 무너지는 실망감!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제행무상(諸行無常:모든 것은 변한다)이라. 시간은 나를 변화 시킨다. 40년 전의 나는 누구며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 누가 진정한 나인가? 그리고 10년 후의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는“시간은 변화의 척도다.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기억 안에만 있다.”고 했다.

작년 10월엔 옥천여고 시절 담임했던 ‘복녀’가 ‘선희’를 데리고 영동 탑선리시골집에 와서 하룻밤 묶고 갔다. 서울 사는 ‘복녀’는 학창시절 문학소녀의 꿈을 살려 아직까지도 시작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대전서 온 ‘선희’는 요리솜씨가 뛰어나다. 정성껏 준비한 산해진미를 차에 가득 싣고 오는 바람에 며칠 동안 포식을 하였다. 우리들은 국화향 그윽한 시골집 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새소리 벗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가을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독일의 에카르트 톨레는 “생각을 멈추면 과거,현재, 미래는 없고, 현재만 존재한다. 생각을 멈추고 현재를 살아라.”라고 했다. 금강경에서도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이라 했다.

우리는 시간의 나그네! 영어로 “Present is a gift(현재는 선물이다)” 라고 했다. 현재에 충실하며, 즐길 줄 아는 것이 ‘시간의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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