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터키의 어린이 책 작가 튈린 코지코으루와 휘세인 쇤메자이는 ‘두 아이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이주 그리고 난민의 문제를 글과 그림의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해냈다.

이야기는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사는 두 가족의 여행을 따라가며 펼쳐진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똑같이 집을 나서는 두 아이들. 글은 똑같은 글자로 표현되고, 그림은 한눈에 두 아이의 현재 상황을 볼 수 있게 한 면씩 표현했다. 남자아이는 엄마와 공원에 들어서지만, 여자아이는 아빠와 맘 졸이며 도시를 벗어난다. 공원에서 남자아이가 밟지 말라는 건 동물의 똥이었고 들판을 지나며 여자아이가 밟지 말라는 건 철조망이 쳐진 지뢰밭이다. 한 아이는 멋진 조각이 된 아치형 다리를 건너며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하지만 한 아이에겐 위태로운 널빤지로 강을 건너며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 한다. 똑같은 놀이기구 앞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고 드디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을 맞이한 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낯선 사람들이 많아 망설여지지만 아이들이 조르니까 두 가족은 관람차에 오르고 이제 관람차는 돌고 또 돌기 시작한다. 서로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함께 관람차를 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까지. 그 순간 누군가 말한다.

“어서! 갈 시간이다.”

세상 어딘가에 대관람차가 새 얼굴을 기다린다. 깨어나 힘차게 돌기를 기다린다. 여자아이의 머리 위에서 때론 갈라져 부서지고 한 조각만 남더라도, 작았던 물고기가 크게 자라나는 것처럼 희망으로 가득 찬 가방을 꾸려보자 한다. 언젠가는 다시 하나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전혀 다른 세상을 여행하며 대관람차 앞에서 만나게 되는 두 가족은 그저 마주칠 뿐 그 어떤 교감도 나누지 않는다. 어떤 이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기의 집을 떠나지만 어떤 이들은 전쟁과 정치적 이유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똑같이 지구 안에 살고있는 사람이고 똑같이 가족끼리 아끼며 염려의 말을 주고받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의 차는 크다. 

작가는 한 아이가 마음 깊은 곳에서 네가 깊이 사랑했던 것을 떠난 적이 있었느냐고 물어보고 그렇다면 이 그림책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멀리 떨어진 도시의 두 가족이 한 가족은 더 행복하기 위해서 한 가족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목숨을 건 여행을 하다가 터키라는 공간 동서양의 갈림길에서 관람차에 올라타지만, 그 차가 안전하게 여러 번을 돌고 돌면서 인류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새로운 목적지에 도착한 곳의 시민들이, 그들이 뒤에 남긴 것에 대한 그리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야야 비로소 그들에게 평화가 온다는 사실도 새로운 발견이다. 대 관람차의 자리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우리는 때로 피부가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르면 안전에 대한 욕구도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부모가 어느 아이가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싶겠는가. 사람은 다 똑같이 안전한 곳에서 살고싶다. 전쟁, 불안, 두려움이 없는 세상을 어른들은 만들고 가꿔나가야 한다. 아이가 안전한 나라는 어른도 당연히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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