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바르도 대표

 

대한민국은 무당의 나라다. 이 말은 우리나라는 무속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고적부터 부족이나 나라에는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제사장이라는 사람들이 하늘에 제를 지내고 신의 계시를 받아 나랏일을 결정했다. 그 제사장이 우리나라에서는 무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우리나라도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가의 일에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사장이나 무녀가 민간으로 내려오면서 무당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럼 부적은 이런 무당이나 민간 신앙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우선 부적과 부작이 있다. 부작은 작은 인형이나 펜던트 등 서양의 마스코트 개념이다. 교회 십자가, 불교의 염주, 천주교 묵주 등도 일종의 부작이라 볼 수 있다. 부적은 흰색 종이나 노란색 한지 위에 경면주사라는 안료를 기름에 섞어 종이 위에 써서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부작은 누구나 본인이 맘에 드는 상징물을 선택해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부적은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절차에 따라 쓰거나 그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적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자부터 그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부적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류가 바위나 동굴에 주술적인 그림을 그리던 원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적이 본격화한 것은 중국에서 밀교 부적이 전래하면서부터다. 밀교가 성행하던 고려 시대에는 밀교 의례가 호국 불교를 발달시켰다. 사찰에서 다양한 불교 의례를 통해서 구태민안, 재액소멸, 질병 제거 등 국가적 재난을 방지하는 기원과 함께 부적 만들기가 성행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시대에 민간에 보편화 되었는데, 사대부나 서민에 이르기까지 집집마다 정월 초에 입춘축(立春祝), 문배(門排), 세화 등을 그려서 문에 붙였다. 조선 후기 동학혁명 때에는 총과 화살을 피할 수 있다 하여 궁릉부(弓乙符)를 태워 재를 먹기도 하였다. 현재는 무속인이나 역술가 또는 절에서 주로 부적을 쓰거나 그린다.

 그럼 이런 부적이 과연 효험이 있을까? 필자는 어느 정도 효과는 있다고 본다. 부적은 일종의 믿음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언젠가 이루어진다. 부적은 음양의 계합(契合)이며, 인간 세상에서 오직 지극한 성의(誠意)를 가진 자만이 영험(靈驗)을 볼 수 있다. 세상은 정영(精靈)과 정령이 서로 의탁하고, 신(神)과 신이 서로 의지하고 있다.

따라서 부적을 쓰는 사람이나 지니는 사람도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부적을 쓰는 사람은 높은 공력을 가질 수록 좋다. 또한 부적을 쓰기 전에 부정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지며 남을 해하는 부적은 쓰지 말아야 한다. 부적을 지니는 사람도 함부로 부적을 펼처보거나 부적에 대한 불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 21세기 4차 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부적의 효능은 반드시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면 하늘을 감동시켜 뜻을 이룬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믿은 가지되 부적에 너무 심취하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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