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 문학평론가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13년 작업한 ‘인문학 개념어 사전 1,2,3’ 출간

문학·역사·철학·예술 분야 중요한 용어 정리

최대한 정확·객관적 설명한 사전형식 글로 기술

현생인류가 미래의 메타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

 

김승환 문학평론가(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68)가 13년간 인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어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책이 3권으로 출간됐다. 전체 2천100여쪽 700여 항목으로 구성된 ‘인문학 개념어 사전 1,2,3’(소명출판사/각권 4만5천원)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을 중심으로 문화·사회·자연·과학용어의 중요한 개념을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한 사전 형식의 글이다.

이 책의 구성은 확장성 기본 텍스트를 바탕으로 다양한 조합과 다각적 응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전체 책은 1권 논리·사상·철학분야, 2권 역사·사회·자연분야, 3권 문학·예술·미학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어로 나누어졌다. 700여건에 다르는 각 항목은 용어 개념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정한 규칙을 정해 기술됐다.

먼저 그 개념이 생성된 기원과 본질을 서술한 다음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의미와 들어가지 않아야 할 의미를 가려냈다. 그리고 사전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일관된 체제를 갖추었다. 아울러 서술의 보편성, 객관성, 함축성, 예술성, 완결성을 추구했다. 모든 개념은 서, 기, 승, 전, 결의 5단 구성으로 서술했다.

하나의 항목을 2천200자로 한 것과 용어의 발췌는 원전 텍스트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집필한 논문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수백권의 원전을 읽기위해 영어, 독일어, 라틴어 등 외국어를 직접 공부했다. 이런 형식적 특징과 함께 내용적 특징은 원 개념을 정확하게 기술하면서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저자의 해석을 가미했다.

저자가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08년이다.

“판화가 이철수 선생과 함께 공부나 좀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인문학의 기초인 예술이론과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채 다음 단계를 공부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거 같아 공부자료를 준비하면서 제대로 된 용어의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저자는 ‘아우라’라는 단어를 예로 들었다. 이 용어를 심도 있게 생각하게 된 것은 ‘모나리자’ 그림의 원작을 직접 관람한 때다. ‘모나리자’는 유명한 작품이라 복제품이나 사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원작을 보고 싶어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는 실제 원작 앞에서 ‘모나리자’가 내뿜고 있는, 진본만이 갖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특별하면서 신비한 그 무엇’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아우라’라고 생각했다.

이후 저자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한학기 동안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책에 대한 집중강의를 듣게 된다. 실제 아우라는 그리스어로 숨결, 바람이라는 뜻이며, 혹은 독특한 그 무엇이라는 의미로 히브리어와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온 개념으로 독일에 살던 유대인 벤야민이 예술용어로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벤야민은 예술에서 인식하고 있는 아우라는 ‘인간이나 사물이 가진 고유의 영적인 것을 의미하면서, 그 존재 특유의 가치를 포함한다’고 했다. 하지만 벤야민은 ‘대량생산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고 그 본질을 잘 나타내는 양식이 영화와 사진’이라면서 ‘진본이나 원본과 같은 고전적인 가치는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며 자본주의 시대의 실상을 강조했다.

저자가 ‘인문학 개념어 사전’에서 설명하는 것은 ‘아우라’라는 단어가 어디서부터 탄생되었는지, 어떤 학자가 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게 됐는지, 현재의 상황은 어떤 변화를 거치고 있는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차라리 내 생각을 주관적으로 쓴다면 더 쉬울거 같아요. 하지만 이번 원고는 내 생각은 글을 시작하거나 마무리 할때 잠깐씩 들어가고 원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해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했어요. 번역본은 여러 단계를 거쳐 텍스트가 변형될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직접 원전을 보느라 외국어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저자는 글에 재미와 멋을 배제했다. 쉽게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의도적으로 문체에 멋을 부리다 원 개념과 달라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저자가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원고 집필과 공부를 하고 있는 목표가 독특하다.

“처음에는 관심있는 역사와 문학에 등장하는 예술용어를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어마어마한 독서량과 생각이 투자되면서 마음이 달라지더라구요. 인류의 한 존재가 생각하고 체험한 것을 훗날 인류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전달하고 싶다는게 목적입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인가 할 수 있겠지요. 이 우주가 공간과 시간의 끝에 다다랐을 때, 인류가 어떤 생각과 체험을 했는지 그 총체적 사유를 다시 시작되는 어떤 미지의 존재에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인문학 용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이 많은 용어 중 개념의 통일이 안된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예를 들면 “‘사과’에 대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문학에서는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의 사과를 반영하는 것만 인정하지만 관념적 언어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와 미래의 사과도 사과”라며 “여러 경우의 사과가 각각 어떤 개념으로 작용하는지가 관심의 대상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다른 측면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인간은 누구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문제를 생각한다. 하지만 완전한 답은 없다. 저자 역시 없는 답을 찾아 사막을 걷듯이 헤맨다. 인간존재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생각과 표현인 문학, 철학, 예술을 알아야 하고 인간 삶의 궤적을 이해하려면 실제 사건인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뿐일까? 인간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는 생물학, 화학이 답을 해주고 인간을 둘러싼 물리적 조건은 물리학이 답을 해준다.

인간이 함께 사는 방법에 관해서는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이 필요하다.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면 인문학을 중심으로 과학, 사회학, 종교 등 거의 모든 영역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인문학 개념어 사전’의 저술 의도는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을 총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미래에 지구와 우주에 살게 될 미지의 존재에게 인간의 사유를 전한다”는 초시간적 대화의 상황을 설정하고 각 개념을 기술할 때 인간의 보편성, 필연성, 객관성을 최우선 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유의 총체성이다.

저자는 총체적 기술에 대한 필연적이고 내적인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 총체적이란 하나의 관점이 아닌 다원적이고 유기적인 관점이라는 뜻으로 이 책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개념을 설정하고, 그 개념을 보편적이면서 총체적으로 기술했다는 의미다.

이 책의 관점에 대해 저자는 “한 개념에는 독창적 사상과 일반적 지식이 결합돼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왜 이런 개념이 생겨났을까?’에 대한 생각”이라며 “칸트의 개념을 기술할 때는 칸트가 되어야 했고, 주희(朱熹)의 개념을 기술할 때는 주희가 돼야 했다. 심지어 히틀러가 되어 ‘나의 투쟁’을 읽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가령 칸트의 순수이성을 기술할 때는 칸트의 책 ‘순수이성비판’을 읽지만, ‘왜 칸트가 순수이성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에서 시작해 전후의 맥락과 형성의 과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결국 플라톤으로 거슬러 가고, 비트겐슈타인에게도 내려오는 종횡의 사유가 필요했다. 콰인(W.V. Quine)으로 한용운을 해석하다가 하이젠베르크로 모차르트를 이해해야 했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어서 하나의 개념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넘는 객관성과 보편성의 용광로에서 용해해 기술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의 기획의도에 대해 “하나의 관점에서 어떤 개념을 보면 올바로 보이지 않는다. 가령 문학의 리얼리즘과 고전철학의 리얼리즘은 의미가 다르다. 그러므로 맥락과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학이고 인간학은 자연학”이라며 “인문학과 천문학(자연학)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학문도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면서 종합적이고 통섭적인 관점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문학, 역사학, 철학, 논리학 등 분과학문으로 나뉘어졌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인문학과 천문학(자연학)에 대한 총체적 기술을 목표로 설정했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객관타당하게 정리하고 보편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인문학 개념어 사전의 기능을 우선한다. 하지만 저자만의 관점이나 이론도 있기 때문에 사전의 기능을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을 총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면서 인문학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을 설명하는 ‘인문학총람’의 성격이 있다. 인간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향후 작업에 대해 “앞으로도 심층적이고 세분화된 항목을 찾아 계속해서 기술할 예정이다. 출간한 용어를 포함해 960항목을 썼는데, 1만 항목을 기술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나의 관점에서 1만 항목을 기술하는 일은 유례없을 것이지만, 독자나 타인을 위한다기 보다는 1차적으로 내 자신을 위한 공부, 내 스스로를 깨우치려는 공부,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는 목표가 만들어져 가능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한 목표란 한 생애에 자기 존재를 이해하고 깊이 깨우치는 길일 것이기에 중요한 동기가 된다”고 말했다.

‘인문학 개념어 사전’은 디지털시대의 텍스트 생산에 적합한 체계로 구성돼 있다. 이 기본텍스트는 연구자나 일반 독자들이 가져다 다양하게 조합하고 응용할 수 있다. 이렇게 기획되고 기술된 이유는 사유의 디지털화가 돼야만 인문학과 주변 영역을 총체적으로 통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방대한 작업을 진행하며 “때로는 망망대해를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일관되게 작업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을 일이다. 수십년 걸려 이 작업이 완성된다면 머지않아 메타인간 또는 인공지능(AI)은 단 45초에 끝낼 것”이라며 “그렇다면 이 작업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묻게된다. 지식생산의 과정에서 메타인간의 45초와 현생인류의 45년은 같은 값이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이 책은 현실의 현생인류가 미래의 메타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책은 인문학 분야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를 의식해 쓴 글이다. 개념 자체가 어려워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기술돼 누구나 쉽게 볼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 독자로 설정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알고 싶어 하는 본성에 근거했다”며 “자기 존재와 인간과 자연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고 읽으면서 사유하는 책, 이것이 독자를 위한 제언”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개념어 사전’은 각권의 서문과 함께 항목별 원전의 출처를 밝혔으며 참조 어휘에 대해 덧붙였다. 각권 뒤편에 인문학 개념어 사전 찾아보기 및 인문학 개념어 사전 총목록표가 담겼다. 1권에는 ‘이발사의 역설’을 시작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탈식민주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노마디즘’ 등  논리·사상·철학분야의 용어 230개 항목이 담겼으며, 2권에서는 ‘나비효과·카오스이론’, ‘이기적 유전자’, ‘마키아벨리즘’, ‘구텐베르크·금속활자’, ‘언어 민족주의’, ‘인쇄자본주의’, ‘제2의 자연’ 등 역사·사회·자연분야 용어를, 3권에서는 ‘아우라’, ‘리얼리즘’, ‘상징’, ‘외설’, ‘비극’, ‘예술가’ 등 문학·예술·미학분야의 용어를 기술했다.

저자는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치고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 강의 및 연구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1986년부터 2020년까지 충북대학교 교수와 미국 듀크대학교 강의 객원교수, 미국 USC대학교 방문교수, 중국 수인대학 강의교수 등을 역임했다. 충북지역사회에서 한국민예총, 한국작가회의, 민교협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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