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최씨는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계모의 아들로 자랐다. 집안의 장손이지만 너무 가난했고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때 류마티스 관절염이 발병했다. 목발을 짚고 등교했고, 담요를 깔고 누워서 수업을 들었다.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다. 2학년 때, 도저히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 휴학을 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마지막 끈을 잡는 셈 치고 교회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낫지 않았다. 3일 금식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까지도 나를 포기하셨구나.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작은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너는 왜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너를 위해서만 기도하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고, 내가 아닌 절대자를 위한 기도를 했다. “지금 이대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그렇게 몇 주가 흐른 뒤, 산속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걸을 수 있다니 이건 꿈이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그제서야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깨닫고 미친 듯이 산을 뛰어 내려와서는 가장 먼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 병이 다 나았어!”

과학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치유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불교를 믿던 집안 친척들에게도 최씨가 예수님을 믿는 것에 뭐라 하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물론 당신은 종교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최씨는 그 이후 많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고난을 반복했다. 잘 다니던 건축과를 포기하고, 교수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운 적이 없는 음악을 시작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있던 시기가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오선지를 그리고 곡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 늦게 얻은 딸은 뇌종양으로 고생하더니 끝내 15세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최씨는 15년간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최씨는 어느날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성대결절에 걸렸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 낫겠지 했던 병이 6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그 고통 속에서 그는 또 좌절하지 않고,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이유를 찾았다.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시골로 이사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동안 바빠서 미뤄왔던 찬양 집필에 전념했다.

지금, 그는 말한다. “저는 자격증이 많은 사람입니다.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을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과 병에 걸린 사람을 공감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습니다. 수많은 실패, 자녀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격증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저에게 고난은 고통이 아니라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필자는 최씨의 간증 내내 눈물이 흘렀다. 고난은 싸워 이겨내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 조차도 또 다른 감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2022년 새해 벽두, 가슴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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