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 맞이한 두 번째 새해이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특히 가족을 떠나보낸 분들과 병상에 누워 계신 분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2년 동안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견뎌내며 많은 사람들이 서슬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명절의 되었지만 일가친척 간의 왕래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예를 갖추는 것이 되고 보니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다.

젊은 날, 어머니는 고달픈 일이 지속되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으실 때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흥얼거리셨다. 긴 한숨과 짧은 탄식으로 토해내는 아리랑은 어머니에게 구령이 되어 준령을 넘게 했다. 때로는 애수에 젖은 어머니의 아리랑 노랫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그 후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이 지나치게 고달프고 외로울 때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흘려보냈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뜻하는 ‘아리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 쓰리랑’은 수난의 선(線)이자 아픈 현실을 넘게 하는 치유의 노래이며, 인생의 길고 긴 장령(長嶺)을 넘을 때마다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했다.

수많은 변곡으로 불리는 아리랑은 60여종으로 3천600여수에 이른다고 한다.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등 슬프다 싶으면 한없이 슬프고 구성지다가 또 한없이 흥겹게 느껴진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기쁨에서 슬픔으로 넘나드는 풍부한 감정을 담고 있다. 노래는 사람들의 애환을 해소시켜 주는 끈이다. 오미크론 변이로 세상을 어지럽힐지언정 이를 물리칠 수있는 힘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도와도 같은 주술적 음악이 아닐까 한다.

개개인들에게 생각과 이념과 신앙까지도 한데 묶고, 서로 다른 공동체를 화합시키며, 빈부의 차이, 지식의 차이, 권력이나 권위의 차이도 허물어 주는 노래는 하나로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제2의 대한민국 국가 송으로 불릴 만큼 아리랑 민요는 최고의 응원가로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국민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던 곡이 아니던가, 하나가 되는 일은 이론이나 이성으로는 힘들지만 느낌이나 감성은 화합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로나 환자가 하루 3천여 명을 넘어서는 요즘, 긴장의 연속이다. 화복무문 화불단행 (禍福無門, 禍不單行)이라 했다. 화(禍)는 혼자 다니지 않고 둘 셋 쌍으로 떼를 지어 다닌다는 말로 이로 인해 경제는 무너지고, 나랏빚은 늘어나고, 근로자는 직업을 잃고 자영업자는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이 절망의 시기에 태산 같은 바위나 돌담을 함께 끌고 올라가는 담쟁이처럼 다 함께 손잡고 아리랑을 부른다면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임인년 새해는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잔디처럼, 밟아줄수록 돋아나는 보리싹처럼 푸르게 일어설 것이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분명 새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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