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보시다시피 ‘기미독립선언서’는 우리 글월이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글입니다. 그 중에 더욱 거슬리는 것이 국한문혼용입니다. 물론 국한문혼용은 꼭 기미독립선언서를 탓할 것도 못 됩니다. ‘황성신문’을 비롯하여 ‘매일신문’ 같은 당시 신문들이 모두 국한문혼용을 골랐기 때문입니다. ‘독립신문’만이 유일하게 한글 전용을 골랐습니다.

앞서 잠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국한문혼용은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글과 한자를 섞어 쓴 적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란 번역서 같은 특수한 사례가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둘을 섞어 쓰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근대 이전의 글자란, 신분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둘을 섞어 쓴다는 것은, 신분을 망각한 짓이기에 지탄받습니다. 그러니 누가 그걸 굳이 욕먹어가면서 섞어 쓰겠어요?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표방했는데, 실제로는 사대부의 반발로 아예 발표조차 못 할 그런 대상이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익히 아실 것입니다. 지배층인 사대부로서는 일반 백성들이 글을 알아서 좋을 까닭이 없고, 오히려 말썽만 일으킬 것임을 아주 잘 알았던 것입니다. 문자란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에도 사대부들은 그것을 공식 문자로 사용하지 않았고, 연산군의 언문 탄압 이후에는 더더욱 사대부들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과 여자들 사이로 활용 공간이 한정되었고, 그래서 한문과 견주어 훈민정음을 상놈들이 쓰는 말이라는 뜻의 ‘언문(諺文)’이라거나 아녀자들이 쓰는 글이라는 뜻의 ‘암클’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김구 선생도 언문을 자신의 부인에게 처음 배웠다고 ‘백범일지’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지배층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시절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죠. 이때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2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한문을 쓰던 사람과 언문을 쓰던 사람. 대세는 백성의 시대로 건너가죠. 그래서 양반들이 백성들의 글인 암클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고, 개화기에 이르러 대중들에게 제 생각을 전하려면 암클이 대세임을 깨닫고 뒤늦게 그 대열로 합류한 것입니다.

이 글자는 원래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그 말은 출생과 거의 동시에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언문이니 암클이니 하는 낮춤말로 불리다가 조선어학회의 주역들이 우리글에 매달리면서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이 이름을 얻기까지 과도기가 있어서 오늘날의 한글날을 옛날에는 ‘가갸날’이라고 했습니다.

‘글’ 앞에 ‘한’을 붙인 것은, ‘한복, 한옥, 한우’ 같은 글에서 보이는 짜임 때문입니다. 중국과 대비되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에 이런 이름을 붙여왔는데, 이런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어 최근에는 돼지고기를 ‘한돈’이라고 부르는 업체도 생겨났습니다. ‘한글’은 그렇게 태어난 말입니다. 아마도 세종대왕이 지금 이 말을 듣는다면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훈민정음’을 되살려 쓰기 어려웠던 것은, 그 뜻이 ‘(임금을 비롯한 지배층이) 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바른 소리’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훈육대상으로 보고 붙인 이름이죠. 그래서 이 암클이라는 낮춤말에 적합한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 ‘한글’이라는 말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보면 아주 자연스럽지만, 당시에 이 말이 얼마나 낯선 말인가는, 그 직전에 쓰인 ‘가갸날’이라는 말이 보여줍니다. 물론 이 이름은 독립신문에서 신문 발간 일을 돕던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비롯하여, 그를 따르던 조선어학회를 구성할 젊은 인재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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