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나는 자칭 진보주의자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이 더 좋아지길 바란다. 강한자보다 약자의 편에 서길 원하며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시선이 간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고 싶다. 그렇다고 생각을 모두 실천에 옮기지는 못한다. 이것이 나의 모순이지만, 아직 나는 진보를 꿈꾼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선배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시합평회가 끝나면 선배와 사창동 순대집에서 순대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시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던 선배들은 민주화운동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며 내가 모르던 세상 이야기를 해주었다. 소위 민중가요를 부르며 치기를 부려보기도 하고 민중가요를 따라 부르며 투사가 된 듯 열의에 차기도 했다. 시골 촌놈에게 1980년대 세상은 딴 세상 이야기였다.

대학 문학동아리도 순수 문학 창작 활동보다 민주화운동 시대의 본거지 같은 분위기였다. 90년대 학번에게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익숙하게 듣고 불렀던 노래와 술자리 분위기 때문인지 오히려 나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후, 나는 자연스럽게 세상의 모순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제주 4·3과 5월의 광주, 독재와 탄압의 세월에 아파했고 여전히 진행 중인 권력에 분개했다. 그렇다고 남들 앞에 나서서 투쟁의 전방에 서거나 일상을 팽개치고 세상일을 돌보지도 않았다. 완벽한 소시민으로 살면서 마음으로만 투쟁하였다.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고 가정을 꾸리니 세상과 타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돈이 없는 날이 많아질수록 세상일이 나와 관계없는 일이 되어 간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망이 있지 않은 일에 무관심해지고 감각이 무뎌진다. 그렇게 나이 먹어 간다.

코로나19가 가정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엄청나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 남의 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경제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다보니 지갑의 두께가 세상을 평가는 지표가 되고 지도자를 평가하는 가치가 된다.

눈앞에 닥친 문제가 중요하지 소원하기만 한 통일, 인권, 환경 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영원한 여당도 영원한 야당도 있을 수 없듯 현재 정권을 잡은 당은 원래 야당이었다. 내 기억은 그렇다. 영원한 야당으로 권력과 맞서 싸우던 투사들이었고 서민을 대신하는 민중의 대표였다. 지금은 어떨까. 민주화 시대를 살지 않은 20~40대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당연히 권력자이며 모순과 부조리를 양산하는 대상일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영원한 권력은 있을 수 없고 권력이 오래 지속되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되어있다. 아마, 20~40대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들어가고 시장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보며 그토록 간절히 노래하고 바라던 세상이 올 것이란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세상은 순간에 변하지 않았으며, 많은 이들의 바람을 충족하지 못했다. 지루하고 오랜 싸움이지만, 과정에서 보인 불미스런 일들은 나약한 소시민을 불편하게 했다.

이제 나는 보수주의자다. 가진 것이 많아지고 생각이 고정화되고 새로운 의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진보를 꿈꾼다. 진보를 꿈꾸는 보수주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소시민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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