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마늘 한 줌 심어 놓고 여간 분주한 게 아니다. 참새떼처럼 하루에도 열두 번씩 휑한 밭을 들락날락하는 것이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솜씨로 무슨 농사를 짓겠나 싶어 시험 삼아 한 이랑만 심었다. 수확의 기쁨을 생각하면 마음은 벌써 저만치 초여름으로 달려간다.

씨마늘을 넣고 비닐을 씌웠다. 뿌듯함도 잠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왜바람이 달려와 비닐을 훌러덩 벗겨버렸다. 마치 세상 구경에 넋을 잃은 탈주자처럼 비닐은 제멋대로 이리저리 나부낀다. 남이 보면 우세스러울까 얼른 보수를 했으나 또 벗겨지고 말았다. 아예 부직포를 사다 덮고 가장자리를 핀으로 고정시켰다. 바람은 나를 비웃듯 또다시 부직포마저 들썩이며 핀을 뽑아내고 있었다.

바람은 무슨 원한이 있어 저리도 갈피를 못 잡고 허공을 헤매는가. 그 두려움에 전선도, 나무들도 정착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윙윙, 붕붕 아우성이다. 참새떼마저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것 같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갈빛 영산홍 잎들이 몸서리를 치고, 퇴색한 신우대는 이리저리 머리를 주억거린다. 바라보고 있자니 내 몸마저 붕 떠갈 것만 같다. 질서도 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이 마치 유령 같다. 보이지 않는 바람은 세상에 대고 위력을 과시하는 듯하다.

참된 힘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어디 두고 보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큰소리치는 사람치고 정작 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동화에서처럼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있는 힘껏 불어온 바람이 아니라 점잖게 소리 없이 내리쬐는 햇볕이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열광하고 주목한다. 불이 나지 않도록 굴뚝을 청소하고 손질한 며느리보다 불난 뒤에 수염을 그슬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불을 끈 아들에게 공을 돌린다.

묵묵히 뒤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 앞에 나서서 목소리 키우는 사람에게 우리는 집중한다. 번지르르한 외형과 언변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진심을 찾아 박수칠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겠다.

선거철마다 세태는 더욱 편치 않다. 코로나19의 확산, 불안정한 부동산, 고령화와 인구 감소…. 이러한 위기가 기회라며 후보자마다 목청을 돋운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외침인지 정작 유권자들은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 힘 있는 목소리보다 조용한 실행을 국민들은 기다린다. 말없이 지켜보는 민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헤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미치광이 같은 된바람의 위세도 이삼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잦아들 것이다. 바람은 바람일 뿐. 내가 마늘밭에 비닐을 씌우고 부직포를 덮은 것은 바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마늘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강풍이 비닐을 벗겨내어 내 발걸음을 잦게 한들 그래도 언 땅속에서 싹을 틔울 놈은 틔울 것이다. 난세에도 역사는 흐르듯이.

된바람이 언제까지 불겠나. 때가 되면 꽃 피고 새 울라고 실바람 되어 봄을 몰고 올 때가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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