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주성 변호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그리고 억울하게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누명은 법조인의 입장에서 매우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100명의 진범을 잡는 것보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사법시스템의 핵심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극명한 예입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20대를 억울하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당사자에게 과연 돈으로 충분한 보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도 치명적인 실수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수사단계에서부터 자백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치밀히 검증하였더라면, 검사가 범인이라 예단하지 않고 신중히 사건을 검토하였더라면, 재판과정에서 좀 더 충실한 변호인의 변론이 이루어졌다면, 판사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한 정도의 입증을 엄격히 요구하였더라면,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며 각 심급의 결론을 만연히 수용할 것이 아니라 진범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했더라면 그러한 치명적 실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많은 법조인들 또한 적어도 당시에는 최선을 다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그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결과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절차적 내용적으로 기대가능한 적법행위를 하지 못하였는지가 확인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책임을 떠나 그 결과 만으로도 어느정도 도의적 책임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최근 한 검사의 용기있는 직접 사과는 본받을만 합니다.

“검사로서 제 처분으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군 사건에선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미안함이 너무 컸습니다”라는 솔직한 심정이야 말로 용기있는 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그 용기있는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누명의 당사자인 최군 또한 국가를 용서할 수 있는 거대한 용기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직무상의 불법행위를 떠나 자신이 원해서 법조인이 되었고 그에 따라 국가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만큼 그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적어도 인간적인 사과는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또 그 조그마한 용기의 시작을 바탕으로 당시 직간접적으로 치명적인 실수에 기여한 당사자들이 심심한 사과를 표명했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런 치명적인 실수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비록 여러 과학적 수사기법의 발달과 법조인들의 역량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서 오판의 가능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료기기가 발달하고 의료진의 역량이 발전해도 의료사고는 발생하는 것처럼 오판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직무상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에 결과는 안타까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스스로의 위로보다는 적어도 막중한 책무 앞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결과 앞에 도의적인 책임감의 차원에서 용기있는 사과를 할 수 있는 법조인의 결기가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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