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풀’이라는 말에는 초록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누가 말했다. 호수라는 말에는 물안개스런 아득함이, 모퉁이에는 만날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할지.

미움이야기가 있다.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치지 않고 계속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조근조근 풀어내 미움의 본질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조원희의 그림책 ‘미움’은 책 겉표지부터 그 일의 어려움을 표상해 두었다. 편해 보이지 않는 얼굴 표정, 목에 걸려있는 생선 가시. 표지만으로도 그림 속 인물이 안쓰럽다.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빨간 얼굴의 아이가 파란머리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갑자기 미움을 통보한다.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다니, 어째서 그러는지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돌아서 가버린다.

이런 무례한 일방성이라니, 이런 일은 사람을 얼마나 당혹하게 하던가. 파란머리는 얼결에 관계의 파국, 존재의 전면적 부정을 당해버린다.

그래서 파란 머리 나도 빨간 얼굴 너를 미워하기로 한다. 미워하기로 하니 밥을 먹으면서도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일방적인 미움을 견디기 위해 대항하는 자기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미움일지라도 마음이 가벼워지기는커녕 일상 자체가 더 힘들어진다.

미움받는 이유라도 알아야 하는 건 아닌가 싶지만 그 날 빨간 얼굴이 종로에서 뺨 맞는 것 같은 일이 있었는데 한강같은 파란머리에게 화풀이했을 수도 있다. 빨간 얼굴은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파란머리의 무엇인가를 핑계처럼 찾아내서 들이밀지 모른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 것인가, 이 속상하고 억울하고 어이없는 무례에 대해.

긁어 부스럼이니 마음 쓰이는 일 그냥 두면 낫기도 하더라고 이웃 여인에게 거들어준 적이 있다. 나이 든 엄마와 갈등하던 나이 든 딸은 병원 신세까지 졌다고 했다. 오고가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는 것도 좋겠다고 한 한참 뒤 조언에 효험봤다고 한결 밝아졌다.

미워하는 마음을 마음에 난 종기라고 할 수 있을까, 자꾸 긁으면 더 커지는. 마음에 족쇄를 채우는 행위로 몸에는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아도 마음을 상처로 둘러싸 감옥을 만드는 그런 일이다.

족쇄를 풀고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와야 하는걸 안다고 해도 빠져 나오는 일이 가볍거나 쉽지 않다. 이미 쏠려버린 감정은 주워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할 일은 그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일이겠다. 상대를 만나 확인하고 물어볼 열정이나 용기가 없다면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을 게 아닐지 모른다. 미움은 무례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를 내 마음에 모시는 일일 수 있다.

일방적으로 나를 미워하는 무례한 그를 마음 바닥에 내버려두고 자신을 달래는 일이 우선이다. 미움받을 용기까지 갈 것도 없이 그는 그대로 두고 나는 나대로 공존해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음의 중심에 그를 모시지 않고 마음 바닥에 내버려 두는 것, 그가 중심으로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바닥에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겠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는게 끌려다니라는 뜻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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