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활쏘기의 적응력은 17세기에 총포가 나오면서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다만 조선의 경우 활의 성능이 워낙 뛰어나서 1894년까지 생명을 연장했을 뿐이입니다. 1899년 이후 활쏘기가 스포츠로 적응하여 현재에 이르는 것처럼, 17세기 총포의 등장과 함께 맞이한 위기를 활쏘기는 어떻게 견뎠을까요? 일본에서는 화류계의 저질스런 오락으로 전락했다가 메이지 유신과 함께 교육체계의 일환으로 자리 잡아 ‘궁도’로 편입되고, 몽골의 경우는 나담 축제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민속경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다행히 우리나라는 유교 국가였고, 유교에서는 활쏘기를 심성 수양과 지배 질서 구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했습니다. 공자도 예를 볼 수 있는 것이라 하여 강조했고, 맹자도 마찬가지로 활쏘기의 미덕을 칭찬했습니다. 도대체 활쏘기에서 말하는 관덕(觀德)이 무엇일까요? 옛 시대의 관념이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도(道)는 어떤 현상의 배후에 서린 원리를 말하는 것이고, 덕(德)은 그것이 현실에 질서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것은 도에 해당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아침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한다는 사실은 덕을 말합니다. 지동설이 알려지기 전의 동양 사회에서는 천동설이 진리였죠.

우리네 삶에서 예를 들자면 예절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부모님에게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박힌 행동 패턴이자 관념인데, 이런 것을 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고 그것은 유학의 3강 5륜이라는 절대불변의 원리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회로 가면 어떨까요? 신분 질서가 바로 ‘덕’입니다. 이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임금은 하늘이 낳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낸 것이니 인간이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고, 임금 밑에서 임금을 돕는 역할의 크기에 따라 신분도 나뉜다고 보는 것입니다. 왕권신수설 같은 것이 사회를 지배하는 ‘도’인 것이죠.

그렇지만 진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옛날에는 그것을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두고 시대에 따라 수많은 논쟁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도와 덕의 이치가 활터로 옮겨오면 어떨까요? 활터에서도 그와 같은 질서를 볼 수 있다고 조선 시대 사람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활쏘기야말로 그런 질서의 모습을 또렷이 보여줍니다. 임금의 활쏘기인 대사례나 지역의 사대부들이 하는 향사례가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국가의 질서가 화살 하나에 드러나는 이치를 본 것입니다. 이것이 활에서 ‘덕을 본다.(觀德)’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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