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텃밭농사를 지어 온 지 20년째다. 처음엔 5~6평 밭을 빌려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시골에 땅을 사 자그맣게 집 짓고 농사짓는 밭이 150여평 된다. 주말에만 하는 것이라 부족한 게 많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땅 힘이 좋아지고 있다. 처음에 집 지을 때 거름기 없는 흙으로 땅을 덮어 지렁이 하나 없던 것이, 이제는 곳곳에서 지렁이가 꿈틀댄다.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고, 비닐도 덮지 않으며, 땅을 갈면서 흙을 잘게 부수지도 않으니, 땅이 천천히 스스로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동네 산책길에서 베어 온 풀, 음식물 찌꺼기, 똥오줌 일부로 퇴비를 만들고 있지만, 아직은 너무나 적어 아쉽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골살이에 매달리면 무엇보다도 땅 힘을 기르는데 애를 쓸 것이다. 힘이 있어야 아프지 않은 법이다.

땅 힘이 좋아지니, 농작물 상태도 좋아져 간다. 벌레 피해가 줄고, 크기도 커지고, 마늘 같은 것은 오래 두어도 쉽게 무르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는 들깨를 털고, 손수 기른 무로 깍두기를 만들었다. 일주일 만에 무맛이 칼칼해졌다. 뒷간 지붕 위로 올라가 잔뜩 멋을 부린 주황색 호박도 하나 땄다.

아내는 밭 여기저기서 냉이, 씀바귀를 뜯었다. 이런 것들을 데치고 무쳐 먹노라면 자연의 기운이 그대로 몸과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농사에서는 이런 활력이 거의 일 년 내내 이어진다.

나와 아내는 농사일 말고 산에 다니면서도 자급자족의 기쁨을 누린다. 두 번 수술로 큰 고생을 한 아내가 이제는 많이 회복되어 주말마다 같이 산에 간다. 우리들 경험으로 산보다 더 나은 치유제는 없다. 산도 농사와 마찬가지로 일 년 내내 먹거리를 준다.

아내는 산초를 좋아해 지난봄 이를 따 장아찌를 담았다. 비비추, 우산나물, 단풍취 같은 나물을 뜯어 장아찌를 담고, 또 삶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때때로 꺼내 볶아 먹는다.

청미래덩굴이나 삽주 뿌리도 캐 우린다. 아내는 수술로 몸이 크게 휘청거렸던 때문인지, 이런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이런 것들을 나보다 더 잘 찾아낸다. 지난 주말에는 석이버섯을 땄는데,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송이나 능이버섯을 따거나 더덕을 캘 줄은 모르지만, 눈에 자주 띄는 먹거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우린 그런 것들이 우리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렇게 텃밭농사를 짓고 산에 다니며 나물 따위를 얻다 보니, 대형마트에 가서 보는 온갖 농작물이 미덥지 않다.

크고 잘나게 보이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얼마나 뿌렸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자급자족을 할 수 없는 시기,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가 그런 농작물을 사다 먹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언젠가부터 우리 먹거리는 획일화되었다. 신토불이는 옛말이다. 키우는 방법이 같고 소비 행태도 같다. 전 국민이 거의 같은 것을 먹는다. 먹는 것의 획일화는 생각의 획일화를 가져온다.

획일화된 사람들은 개성이 없고 자기주장도 없다. 주어진 것에 순종할 위험성이 크다. 획일화로 큰돈을 버는 자본의 노예가 되기 쉽다. 난 20년 전부터 이런 먹거리 획일화에 맞서 텃밭농사를 해 왔다.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작으나마 이런 자급자족 노력이 삶을 즐겁고 풍부하게 만든다는 믿음도 20년 동안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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