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습관처럼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안타까운 사연을 읽었다. 아들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되었단다. 애타게 일자리를 찾던 아들이 드디어 취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의 현금 수거책이었단다. ‘대부업체 수금업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에 속아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던 아들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니 역시 피해자인 피의자란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아들의 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세상에 대고 원망어린 억울함을 구구절절 쏟아냈다. 금쪽같은 아들이 피의자라니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사정은 딱하지만 왠지 씁쓸했다.

그녀의 아들처럼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아들은 아직 어리고 순진하다. 내 아들이 잘못된 것은 순전히 친구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나쁜 친구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까?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오래전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청소년 시절에 살인죄를 짓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 청년의 이야기였다. 그는 모범수로 감형을 받았지만 출소한다 해도 이미 중년을 넘을 나이였다.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어린 나이에 감옥에 들어가서 굵은 주름을 새긴 다음에야 세상 빛을 본다니 청춘을 온전히 반납한 그에게 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래도 열심히 기술을 배우며 익히고 있었다. 쉰 살이 넘어 교도소에서 배운 기술로 과연 사회생활을 얼마나 할 수 있을는지….

부모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그는 동네 형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붙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를 죽이겠다는 말이 무서웠다. 그 일이 자신의 일생을 나락으로 빠뜨릴 것을 가늠하지 못할 만큼 순진하고 무기력한 아이였다. 손자는 감옥에서도 할머니 걱정만 한다. 자신이 출소할 때까지 할머니가 기다려주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안타깝다. 교도소에서 하는 행사에 그는 합창단원으로 뽑혀서 연습에 열중이다. 하지만 막상 공연 날 할머니를 초대한다 해도 어느새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보실까 걱정이 태산이다.

해맑은 얼굴로 노래 연습을 하는 청년의 눈빛은 살인자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고 순진한 내 아들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살인자를 만들었다. 그 험한 길을 가도록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아이는 암담한 자신의 미래보다 홀로 계신 할머니 걱정이 더 크다. 누가 그에게 감히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인가. 그 아이야말로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가 아니겠는가. 한순간 어쩔 수 없이 행한 죄의 대가는 가혹했다. 그 아이는 지금쯤 컴컴한 방에서 무엇으로 희망의 불씨를 피우고 있을까. 여전히 사막에서 발가벗긴 채 거센 모래바람을 맞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나쁜 아들은 없다. 자신을 대변해 줄 어머니가 없을 뿐이다. 내 아들 남의 아들 할 것 없이 자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비록 살인자라 하더라도 그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내 아들처럼 남의 아들도 가슴으로 품는다면 세상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모두가 금쪽같은 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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