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춘추시대(春秋時代)는 고대 대륙의 주(周)나라가 동쪽으로 도읍을 천도한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의 변혁기를 뜻한다. 이 시기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바로 최고통치권의 변화였다. 이전까지는 주나라 왕의 절대 지배가 세습되었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왕의 신하인 제후의 권력이 커지면서 왕을 뒷전으로 몰아내고 천하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계급은 왕의 신하는 제후이고 제후의 신하는 대부(大夫)였다.

진(晉)나라의 대부 양처보는 재산이 많고 사병도 많이 키워 나라 안에서 제법 실력자로 군림했다. 그런 까닭에 유세하는 선비와 학자와 무인들이 양처보의 집을 자주 들락거렸다. 이는 기회가 되면 양처보를 제후에 올리고 자신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함이었다. 하루는 양처보가 위(衛)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다. 위나라에 도착하자 최고위급 대우를 받았다. 만찬회에서 위나라 신하들이 양처보에게 아양을 떨기도 했다.

“대부께서 큰 뜻을 품으신다면 소신들도 기꺼이 그 뜻에 동참하겠습니다.”

양처보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두 큰 뜻을 이야기하자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큰 인물이 된 것인 양 착각하기 시작했다. 귀국하는 길에는 노(魯)나라를 지나 그곳의 한 객점에 머물렀다. 그 객점은 노나라의 이름난 선비들이 천하의 화두를 가지고 변론하는 유명한 곳이었다. 모여 있던 선비들이 양처보를 보더니 서로 먼저 인사하려고 난리가 아니었다. 마침 그 광경을 객점의 주인장 곽씨가 보고 있었다. 곽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객점이나 운영하면서 살 것인가.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한 번 큰 뜻을 품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침 양처보라는 분이 우리 집에 오신 것도 인연이니 내 저를 따라가서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돌아오겠다.”

객점 주인장 곽씨는 그렇게 양처보에 반하여 아내와 작별하고 양처보를 따라 진나라로 떠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곽씨가 되돌아왔다. 그 아내가 의아해서 돌아온 까닭을 물었다.

“왜 양처보라는 분을 따라가지 않고 돌아오신 겁니까?”

그러자 곽씨가 대답했다.

“사람이 보기에는 진지하고 깊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어. 양처보는 머리에 든 것이 없고 행동에 실속이 없고 언어에 조리가 없어. 입만 열면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사람에게 원망을 듣는 일이 많아. 그러고도 자신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니 그런 사람이 어찌 큰 뜻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그를 따라갔다가는 이익은 고사하고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 돌아왔다네.”

1년 후 양처보는 내란음모죄로 체포되어 살해당했다. 그를 따르던 이들도 모두 중죄인으로 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화이부실(華而不實)이란 겉은 화려하나 실속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말이다. 사람의 인격은 입에서 나오고 사람의 본성은 행동에서 나온다. 이는 예부터 전해온 가르침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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