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가을이 되면 영동(永同)은 ‘감나무 가로수길’로 유명하다. 필자의 유년시절은 감나무와 함께 자라다. 풍년일 때는 곶감을 ‘한 동’씩 깎았다. 감이 100개면 1접이요, 100접이면 ‘한 동’이라고 한다. ‘한 동’이라면 1만 개가 된다. 동네 아낙네들이 안방에 모여 감을 깎느라 가을밤이 새는 줄 몰랐다.

우순풍조민안락(雨順風調民安樂)이라지만, 금년에는 감이 흉년이란다. 뒷산 넘어 ‘굴뱅이’에서 막내 동생은 매년 감을 수확한다. 깊은 산골에서 생산된 감이라서 품질이 어찌나 좋은지 청주 친구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금년에도 8박스를 주문했다.

동생에게 가격을 물으니 한 박스에 5만원이라고 대답한다. “8박스니까 40만원이다!”고 청주의 친구에게 전해주었다. 동생 부부가 새벽부터 어두울 때까지 15박스를 땄다고 한다. 필자의 차는 소형 경차인 ‘모닝’이다. 뒷 자석에 억지로 실으니 가까스로 8박스를 실을 수 있었다. 중앙 백미러가 보이질 않았다. 내일 아침에는 청주 친구에게 배달해줘야 한다.

나머지 7박스를 추럭에 싣고 영동으로 가서 출하해 보니, 박스당 ‘5만5천 원’이나 했다. 청주의 친구는 시중가격보다 4만원 덜 받지만, 동생은 ‘4만원’을 손해 보는 셈이 된다. 동생에게 미안하여 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청주의 친구에게 4만원 더 달라 할까?! 그러나 남아일언(男兒一言)은 중천금(重千金)이라고 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갑자기 섬광과 같이 떠오르는 단어 하나가 있다. ‘등신’이다. “그렇다. 내가 ‘등신’이 되는 것이다.”라고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였다. 내가 ‘등신’이 되자!

나무나 돌, 흙 따위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을 ‘등신(等神)’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토요일 오후였다. 미화부장이란 감투를 쓴 덕분에, 황토 흙을 이겨서 여학생 화장실 벽을 바르고 돌아오니 형들로부터 돌아온 것은 “너는 한다는 짓이 등신짓만 골라서 하는 구나!”라고 핀잔들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난 ‘등신’이 셈이다. 그러나 ‘등신’이 됨으로써, 모두가 만족하고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문득 ‘반야(般若)’와 ‘방편(方便)’이란 말이 떠올랐다. 반야는 ‘부처님의 어머니’요, 방편은 ‘부처님의 아버지’라고 한다. 이번에 등신이 됨으로써, 난 반야와 방편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반야란 무엇인가? 지혜다. 절대적인 지혜다. 무엇이 절대적 지혜인가? ‘너와 나’ ‘네 것과 내 것’분별(分別)하지 않는 무분별(無分別)의 지혜가 반야다. 반야는 최고 최선의 절대적 지혜이자 진리인 것이다.

그리고 ‘친구에게는 가격이 40만원이라고 하고, 동생에게는 44만원 받았다’고 한 것은 ‘방편’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대할 때 그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교묘(巧妙)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방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야’는 불모(佛母: 깨달음의 어머니)요, ‘방편’은 불부(佛父: 깨달음의 아버지)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등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반야’와 ‘방편’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등신’을 ‘등신’으로 보지 말자!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자 깨달음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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