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옛말에 “좋은 농사꾼에게 나쁜 땅은 없다”고 했다. 이는 열심히 농사를 짓는 사람은 아무리 나쁜 땅을 만나도 풍성한 수확을 낸다는 뜻인데, 나쁜 땅은 없을지 몰라도 나쁜 날씨는 있는 듯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지 않던 새로운 병충해가 나타나면서 농가의 피해는 매년 커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확을 위해 한해를 준비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과수 산업에서 지난 수년간 가장 큰 이슈는 ‘과수화상병’이었다. 과수의 흑사병이라 불리는 이 병해는 한번 발생하면 나무 전체가 고사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그리고 비나 바람, 곤충과 사람에 의해 퍼지는데, 특히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으면 확산이 잘 되어 기상 상황이 피해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15년 안성, 천안과 제천에서 처음 과수화상병이 확인된 이후로 최근에는 충북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빠른 확산세가 나타나고 있다. 2015년에는 피해 규모(충북도 기준)가 43농가(42.9ha) 정도였던 것에 비해, 2020년에는 506농가(281ha)가 과수화상병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2020년은 과수화상병 뿐만 아니라 여러 병충해가 급증했던 한해였다. 겨울에는 평년보다 1~2도가량 높은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났고, 여름에는 중부지방의 장마가 관측 이래(1973년) 가장 긴 54일을 기록하면서 병충해가 커질 수 있는 고온다습한 조건이 형성됐다. 그로 인해 병충해가 빠르게 확산돼 농민들에게 매우 힘든 한해였다.

이처럼 새로운 병충해가 나타나고, 그 피해가 심각해지는 이유는 기후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의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병충해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 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은 ‘이번 세기 중반까지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21~2040년 중 1.5도 지구온난화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인데, 이는 2018년에 발간된 ‘지구온난화 1.5도’에서 제시된 2030~2052년보다 10년이나 빨라진 수치다.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병충해의 발생과 그에 따른 피해가 불가피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당장 직면한 문제에 대처할 수도 있어야 한다.

병충해를 줄이기 위해 기상청은 농업 분야 관련 부처와 협업해 지역 기상 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 청주기상지청도 2013년부터 충북 농업기술원과 협업해 ‘충북 농작물 피해방지 기상기후정보’와 ‘과수화상병 피해방지 기상기후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지역 맞춤형 기상기후정보는 각 시·군별 기상예보에 따라 병충해 발생예측지수를 산출해 병충해 종류별 발생 및 방제 시기 예측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기상기후정보를 통해 병충해 발생예측지수를 확인하고 각 농작물에 치명적인 병충해가 예상될 때 선제적으로 약제를 살포해 대비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 맞춤형 기상기후정보를 활용해 농업재배지 병충해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효율적으로 방제해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이 서비스의 목적이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짧은 장마로 인해 병충해가 적은 듯했지만 이후에 많은 강수가 연일 이어지면서 추석을 앞둔 농민들에게 또 한 번 시름을 안겼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음을 체감하며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지역 맞춤형 기상기후정보’가 병충해를 줄여 농민들의 시름을 덜고, ‘좋은 날씨’를 만나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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