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청매일] 띄어쓰기를 처음 활자로 풀어낸 사례를 찾아보니, 1896년 『독립신문』이더군요. 독립신문은, 서재필이 만든 신문입니다. 서재필은 3일 천하로 끝난 구한말 갑신정변에 참여하였다가, 미국으로 망명하여 거기서 시민권을 얻었고,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서 독립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독립신문이 왜 띄어쓰기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어를 쓰면서 살던 서재필에게, 영어의 띄어쓰기는 새로운 발견이었겠죠.

이 띄어쓰기는, 독립신문에서 편집하는 일을 하던 주시경에 그대로 이어집니다. 주시경에서 비롯된 조선어맞춤법 제정 노력은, 1933년에 완성을 보죠. 거기서도 당연히 띄어쓰기를 하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내내 띄어쓰기는 없었고, 그 뒤로 나온 『매일신보(1898∼1899)』나 『황성신문(1898∼1910)』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살펴보면 띄어쓰기는 『독립신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여러모로 확실한 듯합니다. 하지만 띄어쓰기가 뜻을 또렷이 해주는 면이 있지만, 우리말이 교착어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띄어쓰기는 계속 우리의 삶을 편안하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최근에는 근대 역사를 새롭게 보려는 사람들이 정치권에서 나타나, 독립을 향한 그 시절 사람들의 노력을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것과는 다른 엉뚱한 시각으로 보는 주장을 내세우더군요. 오늘의 우리에 이른 지난날을 자신들만의 삐딱한 시각으로 비춰보고서는 왜 비판하는지도 모를 비판을 해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자해(自害)나 자학(自虐)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제가 띄어쓰기를 비판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말글 생활에서 불편하다는 점 때문이지, 그것을 제안하고 실천한 분들이 틀렸다거나 잘못됐다고 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조선이 망한 지점에서, ‘앞으로 펼쳐질 나라의 모습을 어떻게 짤까?’ 고민했던 것이고, 나름대로 목숨을 다 바쳐서 공을 들였으며, 그 결과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들의 자취와 사상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은, 그분들의 노력과 공을 깎아내리거나, 그분들 개개인을 비난하고 욕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그분들의 결정이 가져온 ‘불편함’ 내지는 ‘문제점’을 드러내어,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의 업적을 바람직하게 이어가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정치권에서 옛사람들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재판하듯이 과거 사실을 다루는 것은, 결국은 그분들을 욕하는 것으로 끝나는 대안 없는 비판이기에 자해나 자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에 기대어 과거를 보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자해’와 ‘자학’으로 끝납니다. 결국은 그들의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적을 욕하기 위해 과거를 동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현대판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럴 듯은 하겠으나, 그 시대를 산 분들을 모욕하는 일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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