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903년, 무력으로 당나라 조정을 장악한 주전충은 도읍을 낙양으로 천도하였다. 이어 자객을 보내 소종을 제거하고 소종의 어린 아들 애종을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907년, 애종으로부터 선양의 형식을 빌려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로써 290년 이어진 당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나라 후량이 건국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주전충은 혹시라도 저항의 불씨가 될까 염려스러워 어린 애종을 독살하여 죽였다. 이어 당나라 왕실의 모든 친족을 제거하였다. 이제 주전충만이 명실상부한 최고의 권력이 된 것이었다.

시골 촌뜨기 주전충은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었을까? 그는 젊은 시절 먹고 살 방편이 없어 막막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반란군 황소의 난에 가담하게 되었다. 거기서 거침없는 용맹과 다부진 지도력으로 빠른 속도로 군대 통솔 부장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반란군 지휘부에 속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곧 반란군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주전충만은 안목이 달랐다. 차츰 정부군의 공격이 거세어지는 걸 보면서 반란군의 형세가 불리해질 것이라 직감했다. 마침 당나라에서 은밀히 사신을 보내 주전충을 회유하였다.

“항복하면 당신을 정부군의 군대 부장으로 임명하겠소. 그리고 당신 휘하의 부하들은 모두 관군으로 삼아 당신이 지휘하도록 하겠소.”

주전충은 이를 출세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아무리 시절이 혼란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공부 잘하는 부잣집 아들도 벼슬자리 하나 얻기가 어려운데 배운 것 하나 없는 자신을 당나라 군대 부장으로 임명하겠다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다음날 주전충은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당나라에 투항하였다. 혹시라도 자신이 잡혀가면 바로 목이 베어지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주전충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고 생각했다.

“그래, 죽음을 무릅쓰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당나라는 약속대로 주전충을 군대 부장으로 임명했다. 왕으로부터 전충이라는 이름과 많은 예물을 하사받았다. 그 뒤 주전충은 반란군 소탕에 참여하여 가는 곳마다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화북의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한 지역의 군사 최고 책임자인 사령관에 오른 것이었다. 절도사에 오르고 보니 자신보다 강한 군대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처신을 조심하고 상황을 살폈다. 강한 자들이 서로 치고받을 때 모른 척했다. 그러다 그중에 하나가 쓰러지면 그때는 이긴 자에게 붙어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 강한 자가 허점을 보이면 공격하여 자신의 세력을 넓혔다. 그렇게 하여 후량의 왕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주전충은 당나라 고위관료들을 함부로 죽이고 자신의 부하 중에 의심되는 이들을 몰래 없애는 등 성질이 사나웠다. 이런 일로 인해 즉위 6년 만에 아들에게 살해되어 생을 마쳤다.

호혈호자(虎穴虎子)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는 뜻이다. 위험을 각오해야 큰일을 이룬다는 의미다. 산다는 것은 어떤 생각과 어떤 의지를 갖고 사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혹시라도 뭘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그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생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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