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얼마 전부터 이유없이 팔이 저려 한의원에 가 진료를 받으며 ‘우리는 선진국’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지난세월엔 시골에는 한의원이 없었고 설령 있다하더라도 지금 같은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그 지역 사람들 모든 진료를 보곤 했었다.

그 시절 웬만한 상처나 통증은 병원을 가지 않고 자연치유 되기를 바라며 살았고 한의원이라 해도 침 몇 대 놓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오랜만에 한의원에 가보니 예전하고는 많이 달랐다. 의사의 진찰로 시작해 개인별로 별실에 옮겨 안마와 마사지 등 몇 가지 서비스를 한 다음 침을 놔 주기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비용이 궁금하기도 했고 노인 분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이병원 저병원 찾아다니며 혜택을 즐기며 생활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일거라고 판단했다.

특히, 의료 선진국이란 명성으로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의료관광’을 온다는 언론보도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의료진들에게 문의하자 주위에 한의원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안하면 누가 오겠냐고 반문해 공직시절 자주했던 표현이 떠올랐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지만 반대로 서비스 제공자 위치에 서면 점점 더 어렵고 힘들어진다’고 했던 말이 진리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우리는 잘사는 선진국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곤 하는데 금년도 유엔 무역개발회의에서 그간 개발도상국이란 지위에서 공식으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불과 반세기전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름인 ‘선진국’이란 호칭을 받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폐막된 도교올림픽에서 우리선수들의 경기하는 모습과 상대를 배려하는 장면을 보며 우리는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시절과 비교 ‘우리는 잘사는 나라’라고 이야기하면 젊은 세대들은 싫어하기도 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 겪은 사항이고 우리보다 잘살던 나라들이 한참 후진적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기도 하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우리가 이렇게 살기까지는 부모님세대를 비롯한 선조들의 피와 땀의 희생덕분이라는 걸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선진국 현상은 삶의 기본인 의식주에서부터 크게 나타나는데 격세지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지난시절 옷은 겨울에 추위를 이기기 위한 최소의 방편이었지 지금과 같이 옷이 멋과 유행이란 의미는 꿈같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몇 해에 한번 설 명절에 설빔이라고 해서 사주면 아끼고 아껴가며 몇 년을 입다가 키가 커 안 맞으면 동생들에게 물려주곤 했다. 음식도 지금은 대부분 잘 먹고 살지만 예전엔 국밥이나 짜장면 한 그릇 먹기가 어려웠고 연중 특별한 날이나 겨우 먹었다.

거주하는 공간 역시 예전엔 방 한 칸에서 온 가족이 끼어 자다보면 이불 같고 싸우기도 하고 불편도 많았는데 요즘은 식구수대로 방이 있으니 잘사는 나라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된 나라인데 나라 위상에 걸맞게 국민사고와 행동도 선진국민이 되어야 한다.

행복은 가까이 그리고 만족해하는데 있다고 하는데 선진국현상을 자랑스럽게 긍정적으로 보고 살면 모두 행복해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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