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300년 전국시대. 천하는 각 지역의 맹주들이 영토확장을 위해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일삼고 있었다. 순우곤(淳于髡)은 집안이 천한 신분 출신으로 체구 또한 작아서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으로부터 놀림을 자주 받았다. 외톨이로 혼자 지낼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는 거리에 떠도는 잡학을 듣기 좋아했다.

잡학이라 해도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니 세상살이에 제법 큰 도움이 됐다. 수줍고 뒷줄에 서기 좋아하던 소년은 어느덧 장성하여 언변이 뛰어나고 유머에 능해 제(齊)나라의 잡학 학자가 되었다. 하루는 제나라에 머물던 맹자를 만나 천하 현안을 물었다. 순우곤이 묻고 맹자가 대답했다.

“남녀가 함부로 손을 잡는 것은 예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만약 이웃집 여인이 물에 빠졌다면 손을 건네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안 건진다면 그건 짐승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남녀가 손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이지만 위험에 빠진 이를 건져내는 것은 도리입니다.”

“그러면 맹자 선생께서는 지금 천하가 물에 빠졌는데 왜 안 건져내는 겁니까?”

“사람이 물에 빠지면 손을 뻗어 건져내는 것이 도리입니다. 하지만 천하가 물에 빠진다면 어찌 손으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천하는 도(道)로 건져내야 합니다.”

맹자와의 이 문답으로 순우곤은 유명해져 제나라 왕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대치 중인 위(魏)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그러자 순우곤이 아뢰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발 빠른 명견이 있습니다. 근처 풀숲에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역시 재빠른 토끼가 있습니다. 개가 토끼를 보자 뒤쫓았습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토끼를 잡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토끼의 달리기 실력도 대단하여 둘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돌고 풀숲에서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오르내렸습니다. 결국은 도망치던 토끼도 뒤쫓는 개도 힘이 다하여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산골에 사는 농부가 밭 갈러 나왔다가 개와 토끼가 쓰러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농부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두 마리 동물을 얻게 되었으니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나라와 위나라는 벌써 몇 년째 전쟁 중입니다. 이로 인해 두 나라의 병사들이나 백성이나 모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는 제나라와 위나라가 지쳐 쓰러지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습니다. 농부가 두 마리 동물을 힘 안 들이고 얻게 되듯이 말입니다.”

제나라 왕이 그 말을 듣자 즉각 위나라 공격을 취소했다. 그날부터 전쟁보다는 제나라 부흥을 먼저 도모하였다. 이는 ‘전국책(戰國策)’에 있는 이야기이다.

견토지쟁(犬兎之爭)이란 개가 토끼를 잡으려는 다툼을 말한다. 쫓는 개와 쫓기는 토끼가 결국 힘을 다하여 쓰러지자 지나가는 농부가 이익을 얻는다는 비유로 쓰인다. 세상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다투지 마라. 다투기보다 조금 손해를 볼지언정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인생을 보람있게 사는 지혜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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