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칼럼] 꿈, 상불경(常不輕)
[김병연 칼럼] 꿈, 상불경(常不輕)
  • 충청매일
  • 승인 2021.09.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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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주예총 부회장

‘신선들도 머물다 간다.’는 전설이 깃든 고향마을 탑선리(塔仙里)에는 ‘천지봉(天地峰)’이라는 앞산이 있다. 소년들은 매일매일 ‘천지봉’을 마주하면서 꿈을 키웠다. 소년들이 성장하여 20대가 되자 20여명이 모여 ‘천지봉’계(契)를 만들었다. 소년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 졌지만 ‘천지봉’을 통하여 매년 한 번씩은 만날 수 있었다. 반백년 세월이 흐르니,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이라, 소년들도 어느덧 홍안(紅顔)에서 백발(白髮)로 변하였네!

「코로나사태로 비대면 거리두기 정부시책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백신을 접종하였기에 필자가 소집하여 고향에서 십여 명이 모였다. 회원 하나가 하는 말이 ‘앞으로는 예산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번거롭게 무슨 말인가? 회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대부분이‘예산서를 만들라’고 한다. 필자는 불신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여 미칠 것만 같았다.」

괴로움에 꿈틀 거리다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꿈이길 천만다행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자존심이 문제다. ‘상불경’(常不輕: 항상 남을 가볍게 여기지 말자)이란 단어가 생각이 난다.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다. 명성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명성이란 것도 남보다 잘났다는 자만이요 자존심과 직결된다. 모두가 업장(業障:습관의 장애) 때문이다.

인생을 고해(苦海)로 비유한다. 왜 고통의 바다인가? 우리들에게는 세 가지 장애인 ‘삼장(三障)’이 있기 때문이다. 삼장에는 ‘혹장’(惑障: 세상을 잘 못 보는 것), ‘업장’(業障: 잘못된 행위), ‘고장’(苦障: 잘 못 된 행위로 받든 고통)이 있다. 이것을 일러 ‘혹-업-고(惑-業-苦) 삼장’이라고 부른다.

‘혹장’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바로보지 못하고 미혹(迷惑)하게 본다는 것이다. ‘업장’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바로보지 못한 ‘혹장’ 때문에 죄업(罪業)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고장’이란 무엇인가? 죄업 때문에 그 과보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삼장은 ‘혹(惑)->업(業)->고(苦)’라는 상호(相互) 불가분적(不可分的) 일련의 과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통의 여의고 행복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실마리가 되는 ‘단초’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세상을 바로 보는 ‘정견’으로 혹장(惑障)을 제거하는 것이다. 세상을 ‘너와 나’로 나눠서 보는 것이 ‘에고이즘’(이기주의)이요 미혹이다. ‘너와 나’를 넘어서 ‘불이(不二)’사상이 정견이다. ‘너와 나’는 하나로 연결된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로 보는 연기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보는 게 정견이다.

필자는 ‘상불경(常不輕)’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이 세상에 누구를 만나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무시하거나 천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화경에서는 ‘상불경 보살’이 되기를 권한다. 이것이 정견을 실천하는 길이며, 여기에는 어떠한 오만함도 자존심도 명성 따위가 붙을 수가 없다.

“오늘 내가 하는 한마디 말이 가슴 아픈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오늘 내가 짓는 한 번의 웃음이 좌절하는 사람에게 희망의 빛이 되며, 오늘 내가 거는 한통의 전화가 외로운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를!” 라며 상불경의 하루를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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