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903년 당나라 말기. 재상 최윤을 제거하고 소종을 감금한 주전충은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이어 도읍을 장안에서 낙양으로 이주하였다. 낙양은 주전충의 군사적 근거지로 다른 경쟁자들과 전투에서 아주 유리한 지역이었다. 이때 강제로 낙양으로 끌려가는 소종은 자신의 신세를 크게 한탄하였다.

“나는 왕이면서도 내 운명을 어쩌지 못하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정말로 내가 왕이라면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겠는가.”

그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걸고 소종은 은밀히 각 지역의 절도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밀서를 보냈다. 특히 주전충에게 대항할 수 있는 봉상 지역의 이무정, 하동의 이극용, 회남의 양행밀, 서천의 왕건 등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밀서는 예상보다 효과가 있었다. 각 지역에서 서서히 주전충 타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 절도사들은 주전충 공격을 논하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은 소종을 동정심의 대상으로 여겼고 주전충에 대해서는 처단해야 할 악인으로 간주 되었다. 소문이 격화되자 주전충은 다급해졌다. 왕위에 오르려는 계획을 서둘러야 했다.

낙양 천도가 마무리되자 주전충은 작심하고 소종을 죽였다. 이때 소종의 나이 38세였다. 그리고 소종의 아들 13살 이조를 왕위에 앉혔다. 이가 당나라의 마지막 왕 소선제이다. 소종이 죽었다는 소식에 각 지역의 절도사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금방이라도 군사력을 동원해 주전충을 공격하려던 암묵적 거사들이 시들해졌다. 주전충 타도의 목소리는 중립으로 바뀌어 잠잠해졌다. 당시 절도사들은 근본적으로 왕에 대한 충성심은 없었다. 단지 자신의 세력화에 집중되었다. 혹시라도 주전충의 공격 대상이 된다면 근거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도리어 이들의 행동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이제 주전충의 절대 권력에 대항할 세력은 없었다. 소선제는 3년 뒤에 주전충에게 왕위를 선양했다. 이로써 당나라는 290년 만에 멸망했다. 주전충은 대량을 새로운 국호로 정했다. 젊어서 황소의 난에 참가했던 시골뜨기가 화북 제일의 실력자가 되어 마침내 왕위에까지 오른 것이었다. 주전충이 왕위에 오를 때 당나라 신하들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찬양했다. 누구도 주전충을 욕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대량은 천하를 통치한 것이 아니라 낙양 일대에 국한된 지방 정권 수준이었다. 그 외 지역에서는 여전히 절도사들이 주전충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권력을 가졌다.

1년 뒤 어느 날 주전충은 17살인 소선제를 불러 음식을 건네주었다. 소선제는 먹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삼켜야 했다. 음식을 삼키자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독살이었다. 이어 주전충은 소선제의 어린 동생 9명을 모두 살해했다. 시신은 모두 구곡이라는 연못에 던져졌다. 대량의 등장으로 이제 대륙은 혼란의 시기에 돌입했다.

서리지탄(黍離之歎)이란 옛 궁궐에 기장이 자라 그 황폐해진 모습을 보고 슬퍼 탄식한다는 뜻이다. 부귀영화도 명성과 권력도 언젠가는 쇠퇴하니 무상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니 있을 때 욕심만 부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인심을 베풀면 언제고 후손들이 복을 받지 않겠는가.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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