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901년 당나라 말기. 힘의 시대는 왕권과 벼슬아치의 몰락을 의미한다. 바로 군벌이 호령하는 시기였다. 주전충, 이극용, 이무정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이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절대 권한을 가진 절도사였다. 그중 병졸로 시작해서 장군에 오른 이무정은 권력에서 밀려난 벼슬아치들의 절대적 추앙을 받아 빠르게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 여세를 몰아 새로운 왕조를 꿈꾸기에 이르렀다.

소종은 나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왕조의 부활을 위해 묘수를 찾고 있었다. 우선 권력형 환관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중앙의 환관들은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편에 서고 저편에 서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극용이 득세할 때는 이극용 편에 서고 주전충이 득세할 때는 주전충 편에 섰었다. 그리고 이무정이 득세하자 다시 이무정 편에 섰다. 심지어 왕을 호위하는 신책군을 대신하여 이무정의 정예부대가 궁궐 호위를 맡도록 주선했다. 소종은 결사반대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이무정에게 나라 권력을 넘겨주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환관들의 의도대로 일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재상 최윤이 비밀리에 주전충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주전충이 역적 타도라는 구호를 내걸고 군대를 몰아 장안으로 달려갔다. 환관들은 위험을 알고 강제로 소종을 모시고 이무정이 있는 봉상 지역으로 달아났다. 주전충은 군대를 다시 봉상으로 돌려 이무정을 공격했다.

치열한 전투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천하를 호령했던 이무정은 항복하고 말았다. 이때 주전충은 항복 조건으로 소종을 장안으로 인도할 것과 소종을 모셔간 환관들을 모두 주살할 것을 요구했다. 이무정은 16명의 고위 환관들의 목을 베어 주전충에게 보냈다. 하지만 주전충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직접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이무정의 군영으로 들어가 숨어있던 환관 170명을 찾아내 모두 목을 베었다. 그리고 장안으로 돌아와 궁궐의 환관 전부를 죽였다. 그토록 당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던 환관 문제가 이렇게 단숨에 해결되고 만 것이었다.

소종과 재상 최윤은 환관 제거 작업은 성공했으나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그건 주전충의 군대를 막아낼 묘책이었다. 왕실의 힘을 키우기 위해 급하게 새로운 군대 창설을 선포됐다. 의도는 왕실을 호위하기 위한 것이지만 형식은 변경 수비를 위한 것이라 하여 주전충의 승낙을 받았다. 곧 7천명의 신병이 모집되었고 훈련에 들어갔다. 그런데 훈련을 마친 군대가 변경으로 떠나지 않고 계속 궁궐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주전충은 왠지 불안했다.

어느 날 왕실에 남아있던 주전충의 조카 주우륜이 격구를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주전충은 재상 최윤이 음모를 꾸며 죽인 것이라 구실을 삼았다. 그날 저녁 군대를 동원해 최윤과 그 일족 모두를 참수했다. 소종은 궁궐 안에 갇혔다. 이제 당나라의 운명은 주전충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편복지역이란 낮에는 쥐가 되고 밤에는 새가 된다는 박쥐의 변신술을 뜻한다. 이익을 위해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줏대 없는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의리가 없는 자는 언제고 변절한다.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의리 없는 자를 멀리하라.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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