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892년 당(唐)나라 말기. 장안으로 돌아온 희종이 죽자 그 이복동생이 소종(昭宗)에 올랐다. 소종은 영명하고 재능이 뛰어나 신하들은 혹시라도 이 난세를 해결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녹록지 않았다.

우선 소종 추대에 공이 컸던 환관 양복공이 환관의 제1인자가 되어 궁궐의 권력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밖으로는 절도사 주전충이 조정과 밀착하여 힘을 키웠고 절도사 이극용은 외부세력과 연합하여 세력을 키웠다. 왕은 친위부대가 없으니 절도사의 관작조차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무렵 소종의 장인 왕괴가 지방 절도사 자리를 희망했다. 소종이 인사를 관장하는 환관 양복공에게 이를 부탁했다. 그런데 대답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양복공은 입지를 탄탄히 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무관들을 등용하였는데 그 수가 많다 보니 줄 자리가 부족했다. 그러니 황후의 아버지에게 줄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왕괴는 자주 궁궐을 출입하면서 왕의 장인임을 내세워 양복공을 압박했다. 결국은 양복공이 묘수를 짜내어 검남 절도사 자리를 마련해 추천했다. 왕괴가 검남으로 부임하러 떠났다. 그런데 가는 길에 도적으로 가장한 산남 절도사 양수량이 왕괴와 그 일행을 습격해 모두 죽였다. 이는 모두 양복공이 지시한 일이었다.

나중에 내막을 알게 된 소종은 격분했다. 양복공을 죽이고자 했으나 왕에게는 힘이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고작 파면이 전부였다. 하지만 양복공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중으로 도망쳐 소종에게 반항했다. 소종이 지방 절도사에게 토벌하도록 명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봉상 절도사 이무정이 소종의 명을 받아 한중을 공격했다. 양복공은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패하고 외진 산골로 달아났다. 환관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어 이무정에게 부여한 토벌군 중앙 관직을 거둬들였다. 한 사람에게 너무 큰 병권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무정이 왕명을 거역했다. 소종은 이무정을 토벌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거대한 병권을 쥐고 있는 이무정은 정부군을 가볍게 짓밟았다.

마침 재상에서 실각한 최소위라는 대신이 이무정에게 붙어 모사를 꾸몄다.

“장군의 중앙 관직을 거둬들인 것은 재상 두양능의 소행입니다. 그러나 두양능을 먼저 쳐야 할 것입니다.”

이무정은 그 말을 곧이 믿고 장안으로 쳐들어왔다. 이어 소종에게 두양능을 주살할 것을 요구했다. 두양능은 소종이 아끼는 재상이라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재상을 죽이지 않으면 왕이 죽을 판이었다. 두양능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쟁자 최소위의 모사로 목이 베어지고 말았다. 이후 이무정은 지방 네 곳의 절도사 자리와 중앙 군사 자리까지 겸하게 되었다. 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신당서(新唐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역부종심(力不終心)이란 높은 자리에 오르기는 했으나 힘이 부족하여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말한다. 실력이 있어도 세력이 없으면 뜻을 이루기 힘들고, 세력이 있다고 해도 이를 조화하는 실력이 없으면 짓밟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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