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터의 예절 중에 활량 아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예절이 있습니다. 막만타궁(莫彎他弓)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남의 활은 건드리지 마라.’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남의 물건이니 주인의 허락을 받고 만지는 것이니 당연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내막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통 활 각궁(角弓)은 까다롭습니다. 탄력을 최대한 내면서도 충격이 몸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여러 가지 재료를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나무, 뽕나무, 소심줄, 무소뿔, 참나무 같은 것을 민어부레를 녹인 풀로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루기 까다롭습니다. 물론 사용법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지만, 각궁의 성질을 모르는 사람들은 까딱하면 뒤집습니다. 각궁은 뒤집히면 무소뿔이 딱 부러집니다. 무소뿔을 갈자면 활을 새로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거쳐야 합니다.

각궁은 요즘 70만 원쯤 합니다. 옛날에는 쌀 2가마 값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쌀 2가마면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 활을 활터에 주욱 세워 놓았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호기심으로 만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자칫하면 뒤집히고 뿔이 딱 부러집니다. 그러면 그 활을 만진 사람은 얼마를 물어주어야 할까요? 70만원을 물어주어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곤란한 상황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활터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의외로 자주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예절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즉, 남의 물건을 만질 때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사람들의 행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하루가 멀다고 겪으며 삽니다.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런 호기심이 활터에 오면 더욱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설자리 뒤에 놓인 벽의 활걸이에 장난감처럼 짧은 활이 죽 기댄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어, 활이다!’라고 하면서 손이 먼저 활로 갑니다. 당연히 활터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몸서리치게 싫어하죠. 소리를 꽥 지릅니다.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활을 만지려 한 사람은 오히려 반대의 감정을 갖습니다. ‘안 만지면 됐지, 뭘 그런 걸 갖고 저렇게 소릴 질러?’ 하죠. 그 활 때문에 70만 원을 물어야 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면서 그렇게 반응합니다.

2003년 통영 한산섬의 활터(한산정)에서 ‘온깍지복놀이한마당’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활쏘기 하는 신기한 광경에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활 쏘려고 사대에 선 사람들의 다리를 비집고 들어서는 아이들 때문에 대회를 더 진행할 수 없어 결국은 멈추었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런 아이들의 부모입니다. 선수들의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드는 아이들을 말리는 부모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밑바닥부터 무너지고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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