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활터의 예절 중에 선례후궁(先禮後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활쏘기 자체보다 예절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꼭 활만이 아니라 모든 무술에 다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무기는 존재 이유와 목표가 상대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무기로 하는 재주, 즉 무술은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고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상대와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상대를 이겨서 상 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술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이기는 ‘결과’가 아니라, 그런 결과를 낳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대결을 위한 약속입니다. 목표가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이라면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련이나 대결의 형식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차와 형식이 중요하고 그것은 합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강조되는 것이 예절입니다. 물론 법으로 확정할 수도 있고 실제로 모든 스포츠에서는 규칙이 있지만, 규칙이 모든 행위를 다 규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도덕률에 근거한 예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절이 승리라는 목표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대회를 하면 꼭 뒷이야기가 남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좋은 것들도 있지만 오히려 안 좋은 것들이 오래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규칙에는 어긋나지 않았지만, 그 규칙을 최대한 악용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의 격분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쏘기 규칙에 활량은 자기 차례가 되어서 1분 안에 발시를 마쳐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활을 쏘다 보면 대부분 10~20초면 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유명한 시수꾼이 매번 이 질서를 흔들었습니다. 즉 40초까지 아무것도 안 하다가 그때부터 느긋하게 활을 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특히 결승전에서 대거리가 붙으면 둘만 남아서 서로를 이겨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이럴 때 이런 방법을 쓰면 상대는 긴장하다가 지쳐서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결과를 보자면 이것은 자신의 권한이기 때문에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포츠 정신의 차원에서 보면 정말 야비한 짓이죠. 그래서 이런 악용을 막으려고 규칙을 개정하자느니 말자느니 한 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시수꾼의 행실은 국궁계에 전설처럼 떠돕니다.

사람이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는 속일 수 없습니다. 예절은 바로 이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잘해서 상대를 이길 수 있지만, 상대가 못해서 내가 이길 수도 있습니다. 예절은, 상대가 아무리 잘해도 내가 그보다 더 잘했을 때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활을 쐈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서 화살이 떠다밀려 과녁을 맞히면, 결과는 ‘관중’이지만 마음에서는 ‘불(不)’이라고 여길 수 있는 마음이 선례후궁의 ‘예’입니다. 이런 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술은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그 수단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전쟁터에도 예절이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하는 무술에 예절이 없다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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