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침묵은 금이다. 삼사일언.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중년의 남자들이라면 자라면서 흔하게 들어왔던 말들이다. 남자들은 말과 관련해서 우리는 매우 신중한 지침을 받으면서 자랐다. 말을 안 해서 생기는 문제보다 말을 잘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크고 오래간다. 필자는 유독 말 수가 적었고, 그래서 입이 무거운 사람, 신중한 사람, 믿음이 가는 사람이라는 평을 얻었다.

반면 필자의 아내는 정 반대다. 딸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말이 많다. 해야 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말도 가리지 않고 한다. 연애 시절에는 그 명랑함과 솔직함에 마음이 끌렸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필자의 아내는 그 중에서도 유독 더 했고, 지금도 그렇다. 결혼 후에는 이 말 많음이 상당히 귀찮고 신경이 쓰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점심에 뭐 먹었냐? 누구랑 먹었냐? 맛은 어땠냐?” 등 질문 공세가 시작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오늘 먹은 점심메뉴가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필자에게는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생각하느라 머뭇거리는 필자에게 아내는 왜 기억을 못하냐고 또 질문을 한다. 세 번 생각하고 한번 말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진 필자에게는 그 다그침이 짜증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또 왜 짜증을 내냐고 몰아붙인다. ‘아, 나보고 어쩌라고…’ 생각하면서 입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필자는 아내에게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고민된다. 잠깐 정보를 전하려고 말 했다가 1시간 꺼리가 될 지도 모른다. 자칫 잘못하면 어느새 필자는 잘못한 사람이 돼 있고, 감정을 상하고 만다. 그래서 신중 또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말을 꺼낸다. 삼사일언이 아니라 구사일언은 될 거 같다. 그런 필자에게 아내는 입에서 곰팡내 난다라고 핀잔을 준다. 이해는 간다. 남자들 중에서도 말이 적은 편인 필자를 아내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답답하랴. 말과 관련해서 대부분 남자들은 왜 이렇게 신중한 것일까? 편해야 할 가족들과의 대화도 편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자들은 쓸데는 말을 많이 하는 남자를 보면 가볍고, 믿음이 가지 않고, 귀찮은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말을 할 때 늘 신경을 쓰고, 때로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남자들에게도 쓸데없는 말을 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고향의 친구들이다. 어려서부터 삶의 모든 것을 보아 온 사이인 고향 친구에게는 격식이나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평소에는 하지 않던 쓸데없는 말이나 속마음을 아무런 경계 없이 털어 놓는다. 그러고 보니 쓸데없는 말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에게는 아무런 경계나 예의를 차리지 않고 마음을 이야기 할 대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정에서도 그런 대상을 찾지 못한다. 중년의 남자들이 외로운 이유다. 안타깝고 불쌍하다. 언제든지 수다로 마음을 털어놓는, 감정을 털어버리는 여자들과는 다르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평소 지나치게 신중하고 말 수가 적은 석형에게 송화는 “너는 일단 말을 많이 해”라고 조언한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그것이 석형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작이고, 서로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중년의 남자들, 이제 쓸데없는 말도 하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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