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310년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威王)은 젊어서 주색잡기를 좋아했다. 특히 술을 좋아해 즉위하고 매일 술에 취해 살았다. 9년 동안 술에 빠져 놀다 보니 나라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때 신하 순우곤이 상소를 올렸다.

“왕이시여. 지금 마음껏 편히 즐겁게 술을 드시는 것은 제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나라를 빼앗긴다면 그때는 그 좋은 술을 아무리 드시고 싶어도 드실 수 없습니다. 하오니 이웃 나라들이 침범해오지 못하게 나라를 부강하게 다스려 놓고 그때 다시 술을 실컷 드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듣고 보니 괜찮은 말이었다. 다른 신하들은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 순우곤은 그것이 아니라 눈여겨보았다. 그날로 술을 줄이고 국정을 챙기기 시작했다. 먼저 군대를 정비했고 정치를 챙겼다. 직하학사를 설치해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 모았다. 또 부정부패한 관리들을 숙청해 나라 곳간의 도적놈들을 없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나라 군대가 쳐들어왔다. 위왕은 다급해 언변 좋은 순우곤을 불렀다.

“그대는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원군을 요청하라.”

위왕은 약간의 재물을 주며 어서 떠나도록 했다. 그러자 순우곤이 아뢰었다.

“아침에 제가 입궐할 때에 길에서 한 농부를 만났습니다. 그는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병을 재물로 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집안 창고가 넘치도록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기원했습니다. 바치는 것은 적으면서 원하는 것은 과분하니 어찌 농부의 기원이 이뤄지겠습니까. 소신이 이 재물을 들고 조나라에 가면 과연 원정군을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겠습니다.”

위왕이 그 순간 자신이 속이 좁았다는 것을 알았다. 재물을 수레 백 대로 늘려 다시 줬다. 순우곤이 그걸 가지고 조나라에 들어가자 크게 환영을 받았다. 협상도 순조로웠다. 조나라는 파격적으로 군대 10만 명을 약속했다. 순우곤이 조나라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그걸 본 초나라 군대는 서둘러 모두 철수했다.

위왕이 순우곤의 공로를 치하해 연회를 열었다. 술잔을 권하며 위왕이 물었다.

“그대는 술을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가?”

이에 순우곤이 아뢰었다. “소인은 상황에 따라 주량이 달라집니다. 높은 분이나 집안 어른과 술을 마시면 어려워서 몇 잔 마시면 취합니다. 친구를 만나면 소주 네다섯 병은 마셔도 취하지 않습니다. 예쁜 여자와 술을 마시면 그때는 얼마를 마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왕이시여.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기는 법입니다. 술 역시 극에 달하면 사람이 피폐해집니다. 하오니 지금처럼 이후에도 술을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이후에도 술을 절제하자 제나라는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부유한 나라가 됐다. 이는 ‘전국책(戰國策)’에 있는 이야기이다.

신심직행(信心直行)이란 상대가 자신을 믿을 때를 기회로 말하기 어려운 직언을 한다는 뜻이다. 믿음이 없는 사이라면 어느 경우라도 충고하지 마라. 공연히 코피 터지는 수가 있다. 믿음이 생기면 땅속과 하늘 끝까지라도 대화가 통하는 법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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