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8월의 역사인물 ‘이중환’ 선정
공주시, 8월의 역사인물 ‘이중환’ 선정
  • 김태영 기자
  • 승인 2021.07.2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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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실용성 중시한 조선 후기 실학자…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 저술

[충청매일 김태영 기자]

충남 공주시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최고의 인문지리서로 평가받는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을 8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사진)

이중환의 본관은 여주로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실사구시 학풍의 영향을 받았다. 이중환은 아버지 이진휴가 1701년(숙종 27)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받아 공주로 오게 됐으며 이중환의 가족묘(조부, 숙부, 동생)가 세종시 고운동(당시 공주목)에 있는 등 대대로 공주와 인연을 맺었다.

또 지난 1713년(숙종 39) 24세의 젊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지만 극심한 당쟁에 휘말려 네 차례의 형(刑)을 받고 두 차례의 유배를 떠나게 됐고 이후 관직에 뜻을 버린 후 약 25년간 평안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전국을 답사하며 각 지역의 사회·경제를 연구했다.

이어 지리, 생리, 인심, 산수라는 특성을 주거지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삼아 지역을 분석했으며, 1751년(영조 27)에는 이러한 내용을 집대성해 우리나라 최고의 인문지리서로 평가받는 ‘택리지’를 저술했다.

택리지에는 ‘사송정(四松亭)은 우리 집 정자이다’라고 기술한 것으로 보아 어린 시절을 공주에서 보낸 것으로 사료되는데 사종정은 월송동에 있는 정자로 이중환의 5대조 이상의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공주와 계룡산에 대한 내용도 기술돼 있으며 공주는 살기 좋은 고장이며 계룡산은 정기를 품고 있는 으뜸가는 산이라 설명하고 있다.

택리지 저술 이후 선생의 삶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1753년(영조 29)에는 조정으로부터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절충장군(折衝將軍) 품계를 받게 됨으로써 관직을 박탈당한 지 26년 만에 명예를 회복하게 됐으며 이후 1756년(영조 31)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섭 시장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문의 실용성을 중시한 실학자이며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8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며 “이중환 관련 프로그램을 8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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