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收支父母)라는 유교관념이 지배적이어서 몸은 물론 머리카락까지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온 몸을 씻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고 가옥 구조상 목욕탕이 없어 부분욕에 만족해야 했다.  

목욕(沐浴)이란 글자는 머리감을 목(沐), 씻을 욕(浴) 즉,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에는 남녀 아이 어른 모두 머리를 길렀다. 특히 성인 남성의 경우 상투를 틀고 그 위에 망건과 갓을 써야만 의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자주 머리를 감을 수도 없고 오늘날과 같은 샴프도 없어 냄새는 물론 머릿니의 기생물 서식처였다.

서민들은 여름철이나 되어야 냇가에서 그것도 남몰래 전신욕을 하였다. 얼마나 청결에 등한시했으면 나라에서 단오나 유두일을 정해 목욕을 하도록 장려했다. 그러나 궁중에서는 목욕 뿐만 아니라 요양치료를 위한 온천욕을 즐겨했는데 온천은 전신욕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가 흔히 중국인들은 목욕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와전(訛傳)된 것이다. 그들은 1주일에 3번 겨울에도 매일하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하여 연료용 나무가 부족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목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추운지방의 일부가 잘못 전해진 것이다.

중국은 당나라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권세를 누린 양귀비의 입욕(入浴)을 문화자원으로 개발하여 관광화하고 있다. 조각상 뿐만 아니라 실제 화청궁(華淸宮)에서의 목욕탕과 화장법과 목욕 방법을 재현하기도 하며 귀비입욕도(貴妃入浴圖)와 같은 그림도 전시하고 있다.    

여산(驪山) 산록에 있는 온천은 화청지(華淸池)라고 하는데 역대 중국의 제왕이 행궁별장을 세워서 휴양했던 곳이다. 또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해상탕(海常湯)이라는 섭씨 43도의 온천이 있는데 광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관절염과 특히 피부병에도 효험이 있어서 중국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대 임금들도 치유와 휴양을 목적으로 온천욕을 하기 위해 비교적 먼 거리의 온천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 중 청주에 있는 초정약수는 냉천수로 조선시대 세종과 세조임금이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선조 또한 청주 초정약수로 요양을 하려다 온양온천으로 간 적이 있을 정도로 초정약수는 궁중에서도 관심 높은 치유 장소이자 힐링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목욕방법 등 실제적인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실록 등에 남아 있는 다른 지역의 온천 목욕과 관련된 사료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구성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초정약수의 성분 분석은 물론 현대의학과 특히 힐링치유를 위한 목욕법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실제 중국에서는 서태후의 궁중목욕법을 개발하여 관광상품화를 한 적이 있는데 지나치게 고가여서 실패한 바 있다. 봉건 군주시대의 온천행차는 인적ㆍ물적자원을 최대한 동원한 국가 적 이벤트 행사로 정부기구가 이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국가적 행사이다.

오늘날은 초정약수를 비롯하여 일부 지역에서 어가행차를 재현하여 축제 분위기를 돋보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궁중 화장술 등 다양한 궁중목욕문화(Royal bath culture)를 치유와 캉스(Vacance)의 장소는 물론 문화유산을 스토리텔링에 활용하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재가공 특화 콘텐츠로 부가가치를 올리는 경제 산업으로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