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터는 무기를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문서화 되지 않은 질서가 있고, 그런 질서들은 예절로 자리 잡았습니다. 활을 잘 모르는 사람이 활터에 가면 언뜻 눈에 잘 띄지 않는 질서가 있습니다. 알쏭달쏭하지만 사실은 활터 안에는 굉장히 엄한 질서가 있습니다.

예컨대 양궁의 경우 단체전을 하면 세 사람이 3발을 순서대로 쏩니다. 한 사람이 3발을 다 쏜 뒤에 다음 사람이 나가서 또 그렇게 합니다. 이렇게 9발을 합산하여 점수를 계산합니다.

그런데 국궁의 경우는 이렇지 않습니다. 단체전의 경우 5명이 한 팀인데, 양궁처럼 1명씩 나가서 쏘는 게 아니라, 다섯 명이 한꺼번에 나란히 서서, 왼쪽 1번부터 1발씩 쏩니다. 5명이 순서대로 첫 번째 화살을 쏘고, 다시 두 번째 화살을 1번부터 차례로 쏩니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 사람이 다 쏠 때까지 모두 기다렸다가, 쏘기를 모두 마치면 다 함께 물러납니다. 이것을 동진동퇴(同進同退)라고 합니다.

과녁이 있는 곳을 무겁이라고 합니다. 설자리에서 무겁까지 150m이기 때문에 너무 멀어서 무겁에 화살을 주워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전동’이라고 합니다. 활터 건물에서 무겁까지 화살을 실어 나르는 ‘살날이’가 있어서 거기에 실어서 보냅니다. 동진동퇴의 원칙은, 무겁에서 화살을 줍는 사람의 안전 때문에 생겼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설자리에서 사람들이 활을 당기거나 하면 무겁 쪽에서는 쏘는 건지 연습 삼아 당기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쏘고 난 뒤에 사람들이 일제히 같이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겁에서는 활을 안 쏘는 줄 알고 바닥에 떨어진 화살을 주워 보냅니다. 해방 전에는 이 ‘연전꾼’에게 논 서너 마지기를 주어서 생계를 해결하게 하고 살 줍는 일을 전담시켰습니다.

대회는 3순 경기를 많이 하는데, 이렇게 3순을 쏘면 초순에는 왼쪽에 선 활량(우궁)이 먼저 발시하고, 재순에는 오른쪽에 선 활량(좌궁)이 먼저 발시하고, 종순에는 우궁이 먼저 발시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우달이, 좌달이’라고 합니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에게 공평한 조건을 주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질서가 활터 안에 엄정하게 짜였습니다.

‘습사무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활을 쏘려고 사대에 나섰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설자리에서 시끄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집중력에 방해가 된다는 뜻도 있지만, 그 이상의 깊은 뜻도 있습니다. 활쏘기는 호흡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운의 변화와 움직임이 관련을 맺습니다. 그 기운을 관장하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말을 하면 이 기운의 흐름이 끊어집니다. 그래서 활터에서는 떠들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활터에는 예절로 짜인 질서가 있습니다. 활터에 매일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몸에 배어 귀중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발짝만 나서면 교통법규도 안 지켜지는 세상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질서가 신기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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