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 충주농기센터 지도기획팀장]‘띵동!’

일찍 출근한 아내를 대신해 막내놈 등교를 챙기다 늦어버린 출근길을 재촉하듯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림음. ‘화상병 의심 신고, 산척면 명서리, 2조 확인 바랍니다.’

또다시 ‘띵동!’ ‘띵동!’ ‘띵동!’

‘화상병 의심 신고, 엄정면 유봉리, 3조 신속 출동 바랍니다.’

또 시작이군, 어제는 어째 잠잠하다 싶었다. 며칠 남지 않은 행사 준비와 어제가 마감이었던 보고 자료를 챙길 생각에 머릿속이 온통 하얘진다. ‘어쩐다!’ 하지만, 나에겐 선택의 여지는 없다. 서둘러 사무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우리 조원들이 대기하고 있던 화물차에 오른다.

“엄정면 유봉리 154번지, 네! 그제 확진 나왔던 김무용 씨 농가의 인접 과수원이라고요! 네! 네! 알겠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성 주무관이 과수화상병 상황실로부터 신고지 위치와 기본정보를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확진 농가의 인접 과수원이면 양성일 가능성이 크겠군. 수진 씨! 면적이 얼마나 돼?”

“경사지 위주로 1.2ha나 된답니다.”

“그렇게나 넓어? 오늘 고생 꽤나 하겠는걸.”

과수원에 도착하자마자 과수원 주인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조사할 채비를 시작한다.

하얀 방역복에 하얀 덧신, 하얀 라텍스 장갑. 온통 하얀색 물결이다. 화상병 확산 방지를 위한 만반의 준비로 시작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성 주무관과 지 주무관은 톱이랑 조사 도구 챙기고, 다른 곳에도 의심 증상이 더 있는지 살펴보세요. 하 주무관은 간이키트 챙겨서 따라오세요.”

수없이 반복된 일로 우리의 행동은 성급하지 않고 차분하고 신속했다. 과수화상병 간이 검정 키트 양성 판정이 나와야 나무를 자르고 과수원 현황을 조사하지만,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복 학습으로 반 점쟁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농장주가 알려준 화상병 의심 증상이 있는 가지를 잘라, 검정키트의 시약과 함께 즙을 낸 후, 그 즙액에 검정용 종이 막대를 담그고 판정 결과를 위해 15분을 기다린다. 아~! 두 줄이다. 결과는 화상병 양성반응.

“반대쪽에도 몇 개 의심 증상을 검정했더니 양성이 나왔습니다” 성 주무관이 기본 조사를 끝내고 힐끗 나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자, 빨리 움직입시다. 더 더워지기 전에 다 끝내야 합니다. 성 주무관은 수령(나무 나이)별로 다섯 주씩 잘라내고, 지 주무관과 하 주무관은 수령별 나무 주수를 파악하세요.”

“(농장주) 아저씨, 사과말고 복숭아나 자두, 모과 같은 다른 기주식물이 또 있습니까? 참, 집 앞에 장미 조경수도 있던데, 문제 되는 나무는 다 알려주셔야 합니다.”

과수화상병이 확진되면 사과나무와 배나무뿐 아니라 기주식물에 속한 많은 나무를 모두 매몰 처리를 해야 하므로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에 정밀검사 의뢰할 시료를 채취하고, 생석회를 뿌리는 등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조치를 취한다.

매몰 보상을 위한 조사를 마친 후 농장주에게 확인받고 앞으로 일정에 대해 알려주면 우리의 임무는 끝이 나고 후속 조치반에서 매몰 진행 상황을 점검하게 된다.

하루아침 화상병으로 인해 평생의 일터를 잃게 된 농업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얼마의 보상금이 그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까?’

농촌지도사로서 농업인들을 위해 농촌지도에 힘써왔던 18년간의 세월이 과수화상병을 겪고 이겨내면서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무실로 돌아와 땀 냄새 나는 속옷을 선풍기로 말리고 있을 때쯤….

‘딴따라 단 딴 딴 딴, 딴따라 단 딴 딴 딴….’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업무용 수첩을 펼치며 양손으로 얼굴을 부빈다. 이제 다시 힘을 내야 할 때다. 화상병으로 멍든 농심을 어루만지고, 또 농촌지도사로서 창의적 열정으로 농업, 농촌의 공간에서 농업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다시 아름다운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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