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충청매일] 어느 유명가수의 노래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로 풍미되는 시골 전원생활은 어릴 때부터 꿈과 로망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린 시절에 본 농촌풍경은 동화속의 한 장면처럼 한 폭의 그림이었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시절 시골엔 집집마다 소, 돼지, 염소, 토끼, 개와 닭 등을 사육하여 동네전체가 냄새가 진동하고 모기와 파리 등이 버글버글해도 그게 당연한 농촌모습으로 알고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살았다. 그중에 특히 닭을 좋아하였는데 수탉이 새벽에 ‘꼬끼오’하고 날이 밝아 옮을 알려주는 소리는 어린소년에겐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어린 시절 새벽녘 날이 밝아올 즈음엔 닭들과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 닭들 노는 모습과 모이 먹는 광경을 관찰하며 같이 놀곤 했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침 일찍 일어난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는데 성인이 돼서도 아침형인간이 되어 군대시절 6시 기상이나 공직시절 원거리 출퇴근도 별 어려움 없이 즐기며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닭과 같이 생활한 덕분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닭들이 모이 쪼아 먹고 활개 치며 노는 모습은 장관으로서 최고로 아름다운 농촌풍경으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원생활을 갈망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역시 정년퇴직하고 하려면 이미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신감도 없고 넉넉하지 하지 않은 살림으로 묘목을 심어 정원을 만들려면 최소 퇴직 십 여전에는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빚내어 마련했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고심하다 시내에서 가깝고 추억과 인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에 근무한 지역인 내수에 잡았다.

구입하고 보니 관리가 문제였다. 첫해에는 이웃에게 경작하라고 하고 해마다 한쪽에서부터 황금반송묘목을 심기 시작했는데 몇 년 만에 전체가 소나무 밭이 됐다. 초창기엔 틈만 나면 쫓아가 거름도 주고 전지도 해가며 지극정성으로 키웠는데 해가 거듭해가며 나무가 커지자 옆에 나무하고 서로 붙는 바람에 또다시 문제가 생겨 감당이 어려웠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소나무를 많이 심어 돈 주고 사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공짜로 주면 가져간다는 사람만 있으니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해마다 묘목을 몇 십 만원씩 투자하여 천만단위로 조경비용이 들었는데 공무원 넉넉하지 않은 생활에 고심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어 자주 가던 발길도 뜸해지다보니 나무 관리도 엉망이 되고 후회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다 정년퇴직하고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기왕에 키운 거니 그간에 노고와 정도 있고 특히 나무도 생명이기에 누군가에게 주어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숲을 배우고 공부한 숲 해설가의 도리란 생각으로 지인들에게 나누어 줬다. 그리고 가장자리로 소나무와 유실수를 적정거리를 두어 옮겨 심었는데 이젠 제법 정원이 만들어진 듯하여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매일 틈만 나면 찾아가 나무가꾸기와 정원 만들기에 정성을 쏟고 있다.

우왕좌왕해가며 정원 만들기 시작한지가 20년이 돼 가는데 소득이 없으니까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내게는 소소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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