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980년, 송나라 태종 때의 일이다. 한밤중에 궁녀 한 명이 몰래 궁궐 담을 넘어 어디론가 도망치려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벌벌 떨리는 일이지만 궁녀는 무사히 담을 넘어 내려왔다. 그런데 그만 근무 중인 병사에게 발각되어 잡히고 말았다. 궁녀는 병사에게 애걸하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병사는 법을 어긴 일이라며 그녀를 형조에 넘겼다. 형리가 왜 도망가려 했냐고 그녀를 추궁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버지가 병환 중이라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뵙고 싶어 그랬다고 말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로 13살에 궁궐에 들어온 이후로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당시 궁궐 법규에 의하면 허가 없이 궁궐을 벗어나면 참수형에 처한다고 되어있었다. 절대왕정 시대이니 법 또한 무지막지했다. 태종이 이 사건을 보고 받자 잠시 주저했다. 어려서 집을 떠났으니 딸아이가 얼마나 부모가 보고 싶었을까. 그러자 결정을 못 하였다. 원칙대로 진행하라든가 아니면 용서라든가 하는 말이 일절 없었다. 형리들은 말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태종의 의도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이때 관리 유승규가 나서서 아뢰었다. 그는 평소 지혜가 많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데 기민한 자였다.

“정해진 법은 원칙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오니 폐하께서는 이 사건에 대한 처리를 속히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폐하께서 만일 그녀를 동정하여 벌하지 않으신다면 궁궐의 법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중에 같은 일이 생겼을 때 그때는 무슨 법으로 처벌하겠습니까. 하오니 폐하께서 그녀의 처분을 제게 맡겨주신다면 법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증거로 그녀의 심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는 유승규가 태종이 주저한 이유를 재빨리 눈치챈 것이지만 태종 역시 유승규의 의도를 알아채고 그렇게 하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유승규는 태종과 왕비 앞에서 포승줄에 묶인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하들은 모두 눈을 질근 감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린 궁녀가 그리운 부모를 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겼다니.

그녀의 처형은 궁궐 밖에서 집행하기로 했다. 형리 세 명이 그녀를 끌고 가고 유승규가 집행을 확인하기 위해 그 뒤를 따랐다. 일행이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날이 너무 더워 잠시 주막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형리들이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에 유승규가 궁녀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젊은 종에게 그녀를 건네주며 말했다. 서둘러 멀리 떠나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부디 잘 살아라. 젊은 종이 엎드려 절을 하고 이어 그녀를 말에 태워 멀리 달아났다. 한참 후 유승규가 잠든 형리를 깨웠다. 어서 일어나게 집행은 이미 끝났네. 유승규는 주모가 건네주는 돼지의 심장이 담긴 상자를 받아들고 궁궐로 돌아왔다. 태종에게 이를 보여주며 궁녀의 심장이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궁녀들이 모두 통곡하였다. 이후 궁녀들은 죽음이 두려워 다시는 궁궐을 도망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36계’에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지상매괴(指桑罵槐)란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꾸짖는다는 뜻이다. 일은 인정대로 처리하고 교훈은 교훈대로 남기는 지혜로운 처신이다. 법으로 사람을 묶으려는 자는 도리어 그런 법에 자신이 묶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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