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온실가스와 관련해서 유독 미온적이었던 미국도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파리협정에 다시 가입하는 등 탄소중립을 위한 세계질서에 동참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어쩔 수 없이 배출하는 것도 산림 등을 통해 흡수, 제거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이 0이 되게 한다는 개념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하여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야심찬 목표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 탄소중립은 매우 어려운 목표이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와 탄소집약도가 높은 경제구조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1위, 이산화탄소 배출량 7위이다. 석탄발전에 의존하는 전력의 비중이 40.8%에 달하고,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중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인구 규모 28위(비중 0.67%)인 작은 나라에서 너무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고, 줄이기도 어려운 구조이다. 더구나 거대한 유조선처럼 원한다고 당장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

탄소중립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정부가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어떤 환경에 대한 심오한 가치관 때문이 아니라, 세계의 새로운 경제질서에 따라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탄소배출은 산업부문(60.1%)인데, 이 중에서도 제조업이 56.5%를 차지한다. 충북의 탄소배출은 에너지부문 53.9%, 산업부문 37.1%의 구조이다. 산업단지의 에너지는 대부분(80%) 전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력은 충북 이외의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이루어 온 충북은 자체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어렵거니와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경제적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과연 이 희생을 감내할 각오는 되어 있는 것일까? 준비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현실은 수도권으로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산업단지의 수요를 앞장서서 받아들이는 상황이고, 방향을 전환하기는커녕 더 가속하는 유조선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구비중 3.1%(11위)인 충북은 미세먼지 불안지수 5위, 10만명당 자살률 4위,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시간 1위, 규칙적 운동 실천률 17위, 화학물질배출량 5위, 발암물질배출량 1위, 산업폐수 방류량 5위를 달성하고 있다. 1인당 GRDP 5위의 성적 대신 받은 혹독한 대가이다. 자연환경은 이미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 계획된 산업단지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물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폐기물 소각장으로 인해 인근 주민의 식도암 발생률은 전국 대비 2배 가까이 높다. 하천의 수질은 이미 목표치를 한참 초과했다.

탄소중립은 바라지도 않겠다. 그저 지금의 자연환경과 주민이 수용할 수 있는 용량 이내에서 성장했으면 한다. 조금 천천히,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더 여유롭게 가는 것이 충청도의 장점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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