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충청매일]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그만둔 지 4개월 가까이 되어간다. 가끔 일부 행사에 나타나 존재를 과시하고, 대변인까지 두고 살짝살짝 입장도 내고 있다. 지난 6월 11일에는 김대중 도서관을 찾아, 방명록에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썼다. 정치하겠다는 뜻을 사실상 처음으로 공개 선언한 것이라고 본다. 나름대로는 치밀한 준비를 거쳐 한 것일 텐데, 문맥에 맞지 않게, ‘지평선’, ‘성찰’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한 비판이 신랄했다. 그의 정치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

윤석열의 가장 큰 과제는,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바로 정치에 뛰어든 것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검찰은 국가기관 중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대통령의 조국 장관 지명에 맞서, 윤석열을 필두로 한 검찰 조직 전체가 역량을 총동원해 저항했던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결국, 조국은 한 달 만에 장관을 그만두었다. 다수 언론은 윤석열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의롭게 검찰권을 행사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고, 이 때문에 그는 대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국민은 이것을 아주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바라보고 있다. 

군인 박정희가 1961년 총을 들고 권력을 차지한 후 노태우 정권까지 30년간 군부의 억압통치가 이어졌다. 그로 인한 권력의 부패와 인권침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민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군부 쿠데타의 우려가 사라진 자리에, 이제는 검찰이 나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총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갖고 있다. 검찰총장을 마치고 바로 정치에 뛰어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면, 조국 수사를 명분으로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쳤던 검찰 조직은 어떻게 흘러갈까.

검찰권 행사는 공정해야 한다. 어찌 보면, 반칙하는 당사자에게 경고하고 심한 경우에는 퇴장까지도 시키는, 운동 경기의 심판과도 같은 위치라고 할 것이다. 윤석열이 총장을 그만두고 바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심판이 경기 중에 옷을 갈아입고 어느 한쪽의 선수로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그가 심판 옷을 벗기까지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했을까.

많은 사람은 바로 정치에 뛰어든 윤석열에게 그런 것을 의심한다. 당신이 총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하였는지, 또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검찰 조직이 공정한 권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윤석열이 과연 이런 당연한 의심을 설득력 있게 풀어낼 수 있을까. 간접적으로나마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정치참여를 드러내는 방명록 글씨라 긴장되긴 했겠지만, ‘성찰’과 ‘통찰’, ‘지평선’과 ‘지평’을 구별해서 쓰지 못한 그가, 대단히 어려운 위 과제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은 이제까지 언론의 엄호 속에 은근한 냄새로 정치를 해 왔지만, 이제 곧 본격적인 언행이 나오면, 능력과 한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언론의 엄호도 냄새 피울 때나 가능한 것이지, 실체가 드러나면 엄호가 어렵다. 어쩌면 우군이라 여긴 언론이, 한순간에 적으로 돌변해 윤석열에게 총탄을 퍼부을지도 모른다. 난 처음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윤석열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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