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환경부는 지난 5월에 충북 청주시 북이면 소각장 밀집지역의 집단 암 발병과 소각장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북이면 소각시설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과 주민 암 발생 간 역학적 관련성을 명확히 확인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제한적’이다 라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하여 10년간 60명이 암으로 사망한 북이면 주민은 물론 환경단체와 청주시의회가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환경부 역학조사 연구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필자의 기억으로는 북이면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소각시설이 집중되어 있고, 암 환자가 많으며, 소각시설이 설치된 이후에 암 환자가 증가했다는 중간보고 자료이다. 그런데도 환경부가 ‘과학적 근거’를 거론하면서까지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명한 까닭이 궁금하다.

환경부의 ‘과학적 근거는 제한적’이다는 것의 의미도 애매하다. 소각장과 암 발생 사이에 관련성이 없다는 것인지, 관련성을 입증할만한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관련성은 충분히 의심되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의 배출이 많고, 다른 지역보다 암 발생률이 높지만, 그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정확히는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과학적 근거’를 주장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부족한 방법론과 분석의 한계성을 ‘과학적 근거’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모면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그 ‘과학적 분석’에는 언제나 한계와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뭇잎의 흔들림이 바람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치자. 누구나 인정하는 이 사실을 일반 사람들이 과학적 근거로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필 크고 단단한 바나나 나뭇잎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더니 어느 정도의 바람에는 나뭇잎이 거의 흔들리지 않았고, 따라서 나뭇잎의 흔들림과 바람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는 제한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사실 최고 또는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간혹 과학은 불편한 진실을 교묘하게 가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1994년 만들어진 가습기살균제로 1995년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2011년 그 연관성이 밝혀지는데 1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심지어 서울대 교수는 안정성 평가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기도 했다.

2020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경험자는 약 67만명이며 1만4천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가 입증된 사람은 겨우 1천558명(0.2%)에 불과하다.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데 소요된 시간 동안 수많은 추가 희생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어쩌면 ‘과학적 근거’라는 말은 ‘현재 우리의 수준’으로 바꿔서 해석해야 할지도 모른다. 더 속상한 일은, 북이면 주민의 죽음으로 얻어진 경제적 이익은 피해자들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경제성장 정책과 과학적 근거에 묻혀버린 진실과 돌아가신 주민들의 한이 하루빨리 풀어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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