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근의 펜]분단의 아픔은 언제 끝날까
[오원근의 펜]분단의 아픔은 언제 끝날까
  • 충청매일
  • 승인 2021.06.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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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충청매일]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동력으로 삼아, 1989년 5월 28일 참교육을 위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만들어졌다. 그는 그해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정부는 전교조 교사들을 좌경 의식화 교사로 매도하고, 전교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사건을 조작하는 등 온갖 탄압을 가하였다. 그 탄압의 사슬이, 교사가 된 지 3달도 되지 않은 그를 덮쳤다.

그는 1989년 4월, 학생들에게 북한의 산하, 평양 시가지 등 사진을 보여주며, 그 아름다운 곳에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하고, 통일이 되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북한 땅도 통일이 되면 가야 할 우리 땅이고, 북한 주민들도 적대시가 아니라 통일이 되면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릴 한 핏줄이라는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점진적으로 통일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위 수업 후, 학교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 한두 학생이 담임 선생과 상담하면서 위 수업에 대해 말하였고, 그 직후 학교와 교육청 사이에 연락이 오가고, 학교장이 그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고발하였다. 요지는, 그가 수업시간에 ‘6·25는 미군의 북침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 반 ‘56명 가운데 6명’이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이 증거였다. 그는 구속되었지만, 400명이 넘는 전교생들은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며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언론은 전교조 교사가 ‘6·25는 미군의 북침으로 일어난 것’으로 가르쳤다며 대서특필하였다. 유죄의 증거가 된 6명 진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 학생은 그가 수업시간에 말하는 것을 듣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학생에게 말하여 기억한다고 하였으나 그 다른 학생은 그날 결석했다. 다른 학생은 법정에서 앞에서는 들었다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듣지 않았다고 하고, 또 어떤 학생은 그가 ‘미군이 먼저 북침한 것이라고 했다’고 하다가 뒤에는 ‘북한이 남침한 후 미군이 북으로 쳐들어갔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6명의 진술 어느 것도 온전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유죄가 선고되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참교육을 위한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그의 꿈은 3개월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한참 세월이 흘러 다행히 복직은 되었으나, 그 후유증은 몸과 마음에 큰 응어리로 여전히 남아있다. 다행히 최근 재심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번 주에 마지막 공판이 열린다.

그동안 상당한 기간 정권을 잡고 있던 세력은, 민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있는 남북 분단을, 정권을 차지하거나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 왔다.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어, 피고인이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몸과 마음의 후유증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고, 한때는 피고인에게 헤어날 수 없는 굴레를 씌운 국가권력이 늦게라도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바란다.

지난 화요일, 아들을 철원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울먹울먹 돌아오는 동안, 위 사건이 머리를 맴돌았다. 분단의 아픔은 언제나 끝날까? “해방(解放)과 통일(統一)의 깃발이 펄럭이는 날, 강을 거슬러 백 년 전 우리에게로 환한답신(答信) 한 줄 보내주면 좋겠소”(정한용의 시 ‘임정밀지(臨政密旨)’ 중에서)라고 한 임시정부 요인에게, 우린 뭐라고 편지를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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