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280년 전국시대. 이전 춘추시대에 200여 개에 달하던 제후국들이 약육강식의 전쟁을 통해 7개의 제후국으로 정리되었다. 이들은 모두 천하를 지배하려는 한 가지 목표로 전쟁을 위해 군대 확충에 여념이 없었다. 전쟁이 계속되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사상적 논쟁을 벌였다. 그런 가운데 맹자가 나타나 공자에게서 전승한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크게 부르짖었다.

“나라를 유지하고 백성을 살리는 길은 전쟁을 끝내는 일이다. 그러니 군주들은 무기를 들고 싸우기보다 인의로 정치를 해서 누가 더 덕이 많은 군주인가로 경쟁을 해야 한다.”

하루는 맹자가 위나라 혜왕을 뵙게 되었다. 혜왕이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선생께서 먼 길을 오셨는데 우리 위나라를 위해 좋은 말씀 좀 해주십시오.”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군주와 신하와 백성이 모두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됩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소유를 뺏으려 하고 아랫사람은 또 윗사람의 소유를 훔치려 하니 어찌 나라가 편안하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인의로 백성을 다스리십시오. 그러면 부모를 버리는 백성이 없고 군주가 명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적으로부터 스스로 나라를 지킬 겁니다.”

혜왕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쟁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가 이어 말했다.

“군주가 인의를 행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니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게 되고 백성이 떠나면 나라의 군대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백성이 먼저 이롭고 마지막에 군주가 이로워야 백성들이 마음이 편해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폭정을 버리시고 인의로 정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맹자가 간곡히 유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망한 맹자는 제나라로 떠났다. 그곳에서도 왕도정치를 유세했으나 또 거절당했다. 제후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나라를 강하게 하는 술수나 계략이었지 백성을 살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맹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이 70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제자들과 함께 경전을 토론하였으니 그 이야기를 담은 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맹자』 일곱 편이다. 이후 맹자의 사상은 2천 년이 지나서야 그 진가를 발휘했다. 군주제가 폐지되고 민주주의가 실행되자 전 세계적으로 국민을 위한 복지와 정치가 실행된 것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이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인(仁). 창피한 것을 아는 의(義), 겸손하고 사양할 줄 아는 예(禮).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하는 지(知)를 말한다. 나라다운 나라는 올바른 자질을 갖춘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을 걸러내자. 그러면 정말 살기 편하고 멋진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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