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 작가 첫 장편소설 ‘부용꽃붉은시절’ 출간
허난설헌 중심으로 깊은 애민·사회개혁 열망 다뤄

[충청매일 최재훈 기자] 김정애(57) 작가가 첫 장편소설 ‘부용꽃붉은시절’(범우사/1만5천원·사진)을 출간했다.

‘부용꽃붉은시절’은 조선 중기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허초희(난설헌)를 중심으로 깊은 애민(愛民)과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변혁을 꿈꿨던 허씨 일가(一家)의 이야기다. 작가가 2000년 에 단편소설 ‘개미죽이기’로 허난설헌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창작의 계기가 됐다. 

허초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허엽과 오라버니 봉, 동생 균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이상국(理想國) 건설’이라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들의 이상국은 양천(良賤)과 같은 엄격한 신분제도와 남녀차별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공정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의미한다. 유교를 근본이념으로 세운 조선에서 이들 가족의 생각은 이단(異端)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허씨 일가는 권력과 신분이 보장된 권문세족(權門勢族) 임에도 남존여비, 신분세습과 같이 기존의 제도와 규범에 반기를 들며, 차별받는 계층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했다. 온몸을 던져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며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손곡 이달의 영향이 컸다 할 수 있으나 그들 자체가 마음의 문을 열어 놓지 않았다면, 손곡의 가르침은 무의미 했을 것이다. 허씨 일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들의 삶에 매력을 느꼈다. 2008년 겨울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나며, 3년 정도를 계획한 여행이어서 배낭에 뭔가 특별한 것을 담아가야 할 것 같았다. 손곡과 허씨 일가를 이해하기 위해 장만했던 책 몇 권을 넣었다”며 창작의 동기를 밝혔다.

작가는 여행지인 인도 카페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16세기 조선을 기웃거렸다. 가야할 다음의 길 보다 초희와 손곡, 봉과 균의 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만큼 그들의 삶에 매료되었다.

‘부용꽃붉은시절’로 내놓기 까지 10년이 걸렸다. 21세기에 허봉, 초희, 균, 손곡의 삶을 소환하는 일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400년을 건너 뛴 것이 아니라, 400년 동안 생생하게 살아 지금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대해 정종진 문학평론가(청주대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시종일관 필요한 최소 문장으로만 연속되는 장편소설이다. 시에 못지않을 만큼 절제된 문장들이 끊임없는 잔물결로 이어지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시대적 배경이나 당대의 제도, 인간들의 누추한 관습까지도 군더더기로 남겨두지 않아 지루할 틈이 없다. 서사나 묘사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기는커녕 과감하게 생략해 결코 과장되거나 감상(感傷)에 빠지는 일 없어 생동감을 잃지 않는다. 정지용이 쓰는 어휘로, 문장이 ‘혈행(血行)’을 얻는 경지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작가는 한 사람의 전형적 인물을 창조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주요 등장인물군(群)을 만들어 그들을 모두 개성 있게 창조했다. 사회적 관습에 도전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힘들을 강력히 발산하는 신념에 찬 인물들이다.   

정 교수는 덧붙여 “작품은 허씨 가문의 집단무의식 또는 가족집단의 ‘내림’을 형상화한다. 그러니까 DNA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속담으로 요약할 수 있는 만민평등사상이다. 그것이 정치적 이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깨친 데서 왔다”며 “허난설헌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만민평등사상을 품게 하며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고 밝혔다.

“저는 가끔 예전의 누님 시를 생각합니다. 누님은 그것을 상상 속의 세상이라고 했지만, 실제 이 땅 어느 한곳에 누님의 시에 등장하는 낙원의 세계를 만들면 어떨까 하구요. 남녀 차별도 없고, 양반과 상민도 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누는 공평한 세상을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뜻이 맞는 이들이 모여 마을을 이뤄 살면 그것이 누님이 꿈꾸던 이상국(理想國)이 아닌가요?”-본문 중에서-

허균이 누이 초희에게 묻는 부분이다. 이 물음은 초희뿐만 아니라 허씨 가문 구성원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면서 대답이다. 이 물음과 답변이 허씨 가문의 DNA가 되는 셈이다. 정치적 신념이나 문학적 신념이 결국 둘이 아님을 작품은 내내 이야기 하고 있다.

김정애 작가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신문기자로 입문해 글쓰기가 직업이 되었다. 저서로는 소설집 ‘손에 관한 기억’, 생태환경 다큐에세이 ‘미호천’ 등을 출간했다. 미호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이야기 한 장편동화 ‘안녕, 나야 미호종개’는 2020 책읽는 청주 대표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편소설 ‘부용꽃붉은시절’은 퓨전국악팀 파인트리 음악과 함께 작가가 직접 낭독한 오디오북을 유튜브채널(https://youtube.com/watch?v=9q4qPcA3MUA&feature=share)을 통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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