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충청매일] 삶을 스스로 꾸려가지 못하고, 남 눈치 보고 사는 것이 종살이다. 내가 자랄 때 그랬다. 나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어, 당당하지 못하고, 남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못했다. 좋아서 하기보다 잘 보이려고 했다.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는 종살이 삶이었으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우울하고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피똥 싸며 애쓴 덕분에, 종살이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다.

지난 주말, 한 공동체에서 진행된 ‘알기 쉬운 멧나물 들나물’ 프로그램에 두 밤 세 낮 일정으로 다녀왔다. 나물 익히고 뜯는 것 못지않게, 같이 진행된 겨레말(한글) 바로 쓰기를 배우는 것도 뜻깊었다. 프로그램 이름에서 ‘산나물’이 아니라 ‘멧나물’이라고 쓴 데서, 벌써 남다른 색깔을 느낄 수 있다.

프로그램을 이끈 최한실 선생은 “우리 겨레가 마땅히 우리말로 말글살이를 해가야겠지만, 억눌리고 뒤틀리고 구부러진 겨레삶을 살아오는 사이에 우리말에 섞여 들어온 한글왜말, 한글되말, 한글하늬말(서양말)이 오히려 우리 말글살이 줄기를 차지하고, 우리말은 갈수록 줄어들어 잔가지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며 가슴 아파하셨다.

우리가 많이 쓰는 ‘감사하다’는 말은 왜말이고 ‘고맙다’가 우리말이다. ‘주방’은 왜말, ‘부엌’이 우리말이고, ‘출발하다’는 왜말, ‘떠나다’, ‘(집)나서다’가 우리말이다. ‘산야초’, ‘채소’는 다 왜말이고, ‘멧나물’, ‘남새’가 우리말이다. 선생은 우리가 나날살이(일상)에서 입열어 내뱉는 거의 모든 말마디가 한글왜말이라고 하였다. 요즘은 왜말뿐만 아니라 아파트 이름 따위에서 보듯 서양말로 인한 오염도 심각하다.

우리말글이 이렇게 한글왜말 따위에 더럽혀진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말 좋은 것을 모르고, 남 말 좋다고 눈감고 따라간 결과다. 말글살이에서 주인이 되지 못하고 종살이하고 있는 것이다. 말글살이에서 종이 되면, 어김없이 삶에서도 종이 된다. 우리 언론이, 바깥 나라의 작은 본보기와 견주며, 우리 정부의 코로나 19 대응능력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는 것도 그릇된 종살이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말글은 돈에도 굽신거리고 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갔더니, “만구천사백원이세요”라고 했다. “돈한테 왜 존대를 하세요?”라고 하니, “높이면 좋은 거 아니에요?”라고 한다. 지금 세상은 돈이 최고, 그래서 돈에도 존댓말을 한다. 사람도 돈이 안 되면, 존대의 대상이 아니다. 말글이 오염되면서, 인간의 존엄성도 무너지고 있다.

교통 습관에서도 종살이를 볼 수 있다. 한 언론사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대기 중인 보행자가 있을 때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한 운전자는 100명 중 1명에 그쳤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교통법규로는 당연히 걷는 이가 먼저인데, 걷는 이가 차가 다 가기를 기다리는, 불법 상황이 당연시되고 있다. 걷는 이 스스로, 내가 주인임을 모르고, 차의 종이 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이 옛날 백성들이 가마 탄 양반에게 길을 양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종살이는 우리 삶 곳곳에 박혀 있다. 종살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민주주의다. 이젠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고맙습니다’라고 하자.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당당하게 걸어가자. 그렇게 하나하나, 종살이로 억눌리고 뒤틀린 삶을 바로잡아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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