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2020년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해일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로 하루아침에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겼다. 생활 속 거리 두기를 해야 하며 사적 모임과 행사가 금지됐다. 지인들과 식당에서 편안하게 앉아 식사를 할 수가 없다.

휴일이나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려는 인파로 공항이 몸살을 앓았던 것은 이제 옛날 얘기이다. 이제는 가까운 곳 여행도 힘들다. 부모님이 사는 집도, 지인의 집도 방문할 수 없다. 쇼핑도 온라인으로 한다.

나는 2019년 11월 청주시 가덕면으로 귀촌했다. 귀촌을 한 이유는 아이들은 서울에 가고 남편은 명예퇴직을 한 상태여서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커서 나가니 퇴근 후나 주말이면 할 일이 없어 무언가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에 죽을 날만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정신없이 살았다. 직장 생활에, 가정생활에 너무도 힘든 생활이었다. 육아는 오로지 워킹맘 몫이었다. 지금은 육아휴직제도가 있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워킹맘에 대해 배려가 많아졌지만 1990년대는 육아는 오로지 가정에서 책임을 지고 있었으며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육아휴직 제도가 있었다면 아마도 자녀 셋은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든다.

그러한 공허한 마음에 귀촌을 하게 되니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안정됐다. 전원생활을 한다고 하니 남들은 몇 억짜리 집이려니 생각하고 물어보지만 귀촌한 곳은 농가주택이다. 집은 좋지 않아도 마음은 풍성하다.

지금같이 봄이 오니 앞에는 산수유가 피더니 조금 지나 매화꽃이 피었다. 매화꽃이 지면서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피었다.

지난해 귀촌하고 4개월 뒤쯤에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난리가 났다. 사람들 만나는 것이 불안했다. 처음 들어보는 코로나19. 서울에 있는 아이들을 3월부터 농촌에 와서 살게 했다. 6월까지 살았으니 4개월 동안 농촌 생활을 한 것이다. 농촌 생활 후 다시 서울로 돌아가더니 서울이 답답해졌다고 아이들이 푸념을 한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직장 때문에 농촌보다는 도시를 선택해 모두 도시에  집중돼 농촌은 비어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서 도시보다는 농촌이 안전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대면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농촌에 있는 동안에 온라인으로 교육을 하고 모임도 온라인으로 했다.

도시에 있었으면 답답한 공간에 있었겠지만 문 열고 나오면 마당에 앉아 목련, 매화, 개나리, 진달래를 보고 있으니 행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이것이 소확행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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