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어째서 뱃머리를 반대로 돌리느냐?”

“…….”

사공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노만 저었다.

“누구시오?”

최풍원이 사공에게 물었다.

“살수외다!”

“누가 보냈소?”

“그건 알 것 없소이다!”

살수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뱃머리 오른쪽으로 멀리 북진나루가 보였다. 거룻배가 북진을 지날 때쯤 달빛 아래 희미하게 북진여각이 보이자 최풍원이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최풍원은 어둠에 싸여있는 북진여각을 눈 속에 가득 넣었다.

“아까 배 위에서 나를 알아보셨지요?”

“강에서 뱃소리를 들으며 평생을 살았는데 당연한 일 아니겠소? 이 마을사람이면 노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가 있지.”

“그런데 왜 아까 읍리나루에서 그 아녀자들을 따라 내리지 않았소이까?”

“도망친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괜히 나 때문에 아까운 목숨만 더 해를 당하지 않겠소이까?”

“역시 큰 장사를 하는 대인다우십니다.”

살수가 진심으로 최풍원에게 경의를 표했다.

최풍원이 거룻배의 이물에 앉아 뱃전에 부딪치는 물결을 손으로 만졌다. 지나간 일들이 물결처럼 파동을 일으키며 떠올랐다. 모든 일이 일순간처럼 느껴졌다. 간간히 불어오는 강바람에 강가의 억새들이 몸을 부딪치며 서걱서걱 소리를 냈다. 거룻배가 갈대숲을 헤치며 부엉이굴이 있는 엉성벼루 밑 갈대숲에 닿았다.

“최 행수님! 우리 악연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알겠소!”

최풍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대감께서는 배에 단단히 묶어 시신도 찾지 못하게 수장시키라고 분부하셨지만 신체는 장사를 지낼 수 있도록 고이 보존해 드리리다.”

“고맙소이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최풍원이 살수에게 잠시만 시간을 줄 것을 청했다.

최풍원이 의관을 단정하게 갖추고 배의 덕판에 꿇어앉아 생각에 잠겼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최풍원이 일어나 고향 도화동을 향해 재배를 올렸다. 한양에서 참살당한 후 시신도 찾지 못해 묘도 없는 아버지에 대한 예였다. 그리고는 남쪽을 향해 다시 재배를 올렸다. 연풍에 계신 어머니께 올리는 이승의 마지막 인사였다.

“보연이도 지키고 가문도 일으키라는 어머니 말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저승에 가서 어찌 어머니를 뵈올지 면목이 없습니다.”

최풍원이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자, 이제 시작하시게!”

덕판에 엎드려 있던 최풍원이 윗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앉은 채 고물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통 없이 빨리 끝내드리리다!”

“고맙네.”

살수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들었다. 칼날이 달빛에 반짝 빛났다. 칼날이 달빛을 갈랐다. 순식간이었다. 살수의 칼끝이 최풍원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악!”

최풍원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비명소리는 바람에 서걱거리는 억새 소리에 묻혔다. 갑자기 몰아친 강바람에 숲처럼 우거진 억새가 일제히 한쪽으로 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새어 들어온 달빛에 강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최풍원이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달빛에 빛나는 강물을 만지려는 듯 안간힘을 다해 손을 내뻗쳤다. 그러나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아-, 저 가앙…….”

최풍원의 눈앞에는 시리도록 파란 강물이 끝없이 펼쳐졌다. 비봉산 너머로 달이 점점 이울고 있었다.

며칠 뒤 북진여각에는 인근에서 몰려든 마을사람들과 도중회의 객주들, 그리고 보부상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앞마당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꽃가마가 최풍원 대행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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